부모님은 입버릇처럼 우리에게 돈을 물려주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이미 자신들의 풍요로운 기억을 물려주었다고 믿는다. 그 덕분에 우리는 주렁주렁 송이 지어 매달린 등나무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이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경탄의 순간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부모님은 우리가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고 무한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두 다리를 주었다. 그것이면 스스로 여행하기 위한 짐 가방으로 충분하다. 그보다 많으면, 들고 다녀야 하고 지켜내야 하고 항상 살펴야 하는 재산들이 우리의 여정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베트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만 겁날 게 많다. 머리카락이 없으면 잡아당길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내 몸에 지닐 수 있는 물건들만 가지고 다니려 노력한다. - 66~67쪽
오늘은 일을 하면서 지치고 고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랬다.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퇴근을 하니 그런 부정적인 마음이 쏙 하고 사라졌다. 얼른 집에 가서 아이를 보고, 고수와 숙주를 넣은 민선이가 극찬한 쌀국수에 떡볶이와 순대를 먹자는 생각 뿐. 지하철 안이다. 오후에 고단한 생각이 들 때에 오늘은 꼭 블로그에 올해의 첫 글을 남기자 결심에 결심에 결심을 했는데 집에 가면 놀고 먹고 치우고 씻기고 반찬하고 자기 바쁠 것이므로 퇴근전철 안에서 써본다. 아, 정말 오랜만이다. 아이 사진이 그득한 사진첩에서 끄집어 내 본 나의 1월의 풍경들. 그런데, 죄다 음식 사진들이네.
일요일 밤 넷플 <원테이크>를 봤다. 동생이 꼭 맥주를 마시며 유희열 편을 보라고 했기 때문에 김치냉장고에 있던 크라운 맥주 캔을 꺼냈다. 최근 엄청 좋아하게 된 살라미도 얇게 잘랐다. 지안이 덕분에 예정에 없던 월요 휴가가 생겨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죽기 전 딱 한 곡을 할 수 있다면? 유희열은 고심 끝에 한 곡을 골랐고 그 곡이 시작되자마자 내 찌질했던 이십대 연애담이 머릿 속에 펼쳐졌다. 아니다 삼십 대까지네. 연애담 뿐만이 아니다. 찌질했던 업무담, 찌질했던 친구담, 찌찔했던, 찌찔했던. 다시 그 찌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렇게 사십대가 된, 초등학생의, 청소년의 엄마아빠가 된 사람들이 거기 앉아 있었다. 어떤 남자는 펑펑 울었다. 어떤 여자는 마이크를 들고 울면서 말했다.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 관객들이 진심으로 웃었다. 나도 웃었다. 같이 티비를 보던 남편도 웃었다. A는 그냥 나쁜 남자였고, B는 나의 허상을 본 거였다. C는 끝내 나를 버렸고 그걸 후회하지 않았다. D랑 사귀었더라면 내 이십대는 어떠했을까. 내가 도망친 수많은 자리들이 생각났다. 내가 즐겼던 수많은 만취의 밤이 생각났다. 이상하게 그때는 그렇게 밤새 술을 먹고 들어와 따뜻한 온돌방에 몸을 지지며 순식간에 잠들기 시작한 아침이 좋았다. 철이 없고 책임감도 없고 자신감도 없던 시절들. 그 시절을 지난 사람들이 토이의 7년만의 공연에 앉아 있었다. 그때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그때가 있어 지금의 내가 있노라 말하면서. 지난 토요일, 그러할 미래를 한순간에 잃은 청춘들의 뉴스를 티비에서 봤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사십 대가 되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어떤 가수가 용기를 내 간만에 여는 공연 한 구석에 앉아 그 가수가 노래하는 첫 구절을 들으며 이십 대의 나로 순식간에 돌아가는 경험을 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다시 시작된 긴 출퇴근길. 잠시 멈췄던 출퇴근 책도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 씻고 아이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고 그날 입을 옷을 챙겨놓는다. 돌봄 선생님이 먹여주실 저녁밥, 오후 우유, 보리차도 따로 챙겨두고 바나나 넣은 아침밥도 준비한다. 주전자에 물을 팔팔팔 끓여 2인분의 커피를 내린다. 간편하게 커피포트를 살까 했는데 마땅한 걸 발견하지 못해 드리퍼로 내리고 있다. 준비하는 사이 해가 떠오르고 아침이 밝아오고 여섯 시 아침 뉴스도 시작된다. 저녁이 되면 무척 피곤하지만 바삐 움직이는 아침이 힘들기만 한 건 아니다. 휴직 중에는 아침에 잘 일어나 지지 않았다. 십년 넘게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휴직기간에는 몸도 아는지 늦잠을 자댔다. 아침 커피를 내리는 데도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지금은 텀블러에 담아 밖에서 마실 생각을 하면 고단하지가 않다. 맛있게 내려져라 맛있게 내려져라 조용히 주문을 왼다. 곧 추워지고 이 생활도 익숙해지면 이 아침도 이 긴 출퇴근길도 천근만근이 되겠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이를 그리워하며 바삐 지내는 낮 시간도 나쁘지 않다. 저녁이 되면 만날 수 있으니까 그동안 선생님들이랑 친구들이랑 신나게 놀라고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내고 만나자고 아침에 빠빠이 인사를 할 때마다 말한다.
세탁기에 섬유유연제를 반 컵 넣고 헹굼 버튼을 한 번 누르고 세탁기를 다시 돌린다. 이제 평일 낮에 세탁기 돌리는 일은 힘들어 지겠지 생각하니 세탁기를 돌리는 일도 애틋해진다. 어제 육아휴직이 끝났다. 오늘부터 연차를 8일 소진하고 22일 월요일에 출근을 한다. 16일부터는 지안이 하원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함께 적응해 나갈 거다. 그리고 이번주 목요일에 운전면허증을 찾으러 간다. '엄마의 도전'은 성공했지만 (야호!) 아, 모든 과정이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지경까지 갔더랬다. (남편이 이럴 거면 그냥 따지 말라는 소리까지 했다) 어찌되었든 '간신히 합격'해서 목요일에 또다른 신분증이 생긴다. 이제 학원차의 갑옷을 벗고 진짜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일단은 이 기쁨을 만끽하기로! 팀장님께 휴가계를 어떻게 제출해야 할지 물으면서 면허 합격 소식을 전했는데 잘 할 줄 알았다고 자신이 아는 나는 뭐든 잘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셔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있었던 일이 아득한 꿈 같다. 만삭의 피 비침, 조금 이른 출산 휴가, 나중에 그리워질지 모르고 종일 누워 있어야 해서 힘들었던 시간들, 수술날의 풍경, 수술실에서의 일들, 신생아실에 갈 때마다 매일 잠만 자서 순한 줄 알았던 탕이, 처음 모유수유를 하려고 했을 때의 당혹감, 실은 매일 잠만 자는 게 아니였던, 엄청나게 큰소리로 울어대던 당황했던 조리원 가는 길, 천국인지 모르고 초반에 우울해하면서 지냈던 조리원에서의 날들, 밤낮 없었던 신생아 시절, 매일 거의 안고 있어야 했던 등센서의 날들, 집안의 아무 물건도 건드리지 않고 뒤집고 기기만 했던 지금 생각해보니 평온했던 시간, 이가 생기며 모유수유 중 가슴을 깨물기 시작해 겁이 나던 날들, 마트 앞에서 불현듯 모유수유 중단을 결심했던 날, 너무너무 맛있었던 첫 맥주, 집에서만 시간 보내기 답답해 매일 노을을 보러 유모차를 끌고 나갔던 날들,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하며 걱정했던 일들, 셋이 함께 보낸 첫 크리스마스, 첫 새해, 첫 외식, 첫 여행...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지하주차장을 통해 등원을 했다. 어린이집이 같은 동이라 비가 오는 날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등원할 수 있다. 오늘도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담임 선생님이 아니신데도 격하게 맞이해주신다. 언젠가부터 지안이도 선생님이 반가워 잼잼을 하는데 그러면 선생님이 "나도 니가 너무 좋아" 해주신다. 큰 아이 반 선생님이신데 오늘은 지안이에게 언제 커서 우리 반에 올래? 빨리 오면 좋겠다 하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라는 표현도 자주 해주신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 뉴스에는 어린이집의 안 좋은 이야기들 뿐이지만 5개월동안 다녀보니 좋은 선생님들이 많다. 예뻐서 주셔서 감사해요 인사하니 아니라고 정말 지안이가 좋은 거라고 지금이 합법적으로 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하며 지안이를 꼭 안아주신다. 곧 담임선생님 품에 보내야 한다며.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극한 경험들을 한 동생은 오늘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실패가 다 경험으로 남는 거 같다고. 계속 도전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그냥 평온한 상태 그 자리에만 있게 되는 것 같다고.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였다고. 지안이도 남편도 나도 이제 새로운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다짐해본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서로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좋은 날들이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아자아자 화이팅이라고-
<해방일지>에 한창 빠져 있었더랬다. 다 본 내용이었는데도 집안일을 하면서 괜시리 틀어놓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안일을 하다 드라마 OST가 흘러나오면 '아, 그 장면'이구나 하며 배우들의 표정들을 떠올렸다. 지금도 OST를 들으면 몇몇 장면들이 생각이 난다. <헤어질 결심>의 마지막 장면을 볼 때 알았다. 쓸쓸할 때 이 장면이 자꾸 떠오를 거라는 걸. 박해일이 출렁거리는 물결 속에서 방금 깨달은 사랑을 찾아 헤매는 장면. 박해일의 대사처럼 잉크처럼 스며들어 서서히 번지는 것들이 있다. 좋은 이야기, 좋은 장면들이 내게 그렇다. 그런 것들은 내 몸에 살포시 스며들어 있다 어느 순간 고개를 내민다. '나도 이렇게 힘들었잖아. 너 봤잖아. 그런데 이겨냈잖아. 지나고 보니 별 거 아니였잖아. 응, 괜찮아질 거야.' <해방일지>의 이민기도 언젠가 내게 힘을 줄 것이다. 이민기는 드라마 초반 내뱉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삼키는 사람이 되었다. 나쁜 말들을 나쁜 일들을 내뱉지 않고 삼켜서 이겨내는 사람이 되었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산을 보러 가고 책을 읽으며 자신의 내면을 단단히 다지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했을 때 자신에게 온 평화를 진정으로 맛보았다. 크지 않은 수입을 소중히 여기고 낭비하지 않고 남들 보기엔 지루해보일지 몰라도 평범하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두 편 다 일상을 살다 문득 생각이 난다. 그러니 좋은 영화였고 좋은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