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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산일기 - The Origin of Love
    극장에가다 2011. 4. 25. 22:51


       지난 토요일에 한 일에 대해 써야겠다. 지난 토요일은 출근하는 토요일. 1시에 일이 끝났다. 합정에 도착하니 1시 반즈음. 동생이랑 밥 먹으려고 했는데 피곤한 동생님이 거절. 마음산책 책을 반값에 판다길래 후마니타스 책다방 주차장에 들렀다. 요네하라 마리 책 두 권을 사고 튼튼한 마음산책 가방도 받았다. 책은 표지가 조금 더러운 상태. 상관없다. 내 지저분한 가방에 들어가면 새 책이 바로 헌 책된다.

       버스를 탔다. 대학로로 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영화 시간을 놓칠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져서 내려서 택시를 탔는데, 종로에서 차가 완전 막혀 영화 시간 임박. 이럴 때 유용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씨네코드 선재에 알맞은 시간대가 있었다. 종로에서 내려 인사동까지 걸었다. 배가 너무 고파 옥수수 호떡도 하나 사먹었다. 정독도서관 가는 길. 꽃이 폈다. 바람이 불었다. 아, 봄날의 토요일. 세시 이십분 표를 끊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고등어 구이 정식을 시켜 먹었다. 가시까지 싹싹 발라 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본 <무산일기>. 저번주에 보고 싶은 영화 연이어 다 봤다. <제인에어>, <파수꾼>, <무산일기>. 모두 좋았다. 정말 좋았다. 봄이 되었고, 나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보았다. <무산일기> 뒤에는 짧은 GV도 있었다. 배우가 감독인지 몰랐는데, 그가 연출도 하고 연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후배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연기를 하면서 그의 처지를, 그가 처했던 현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없다고 했다. 위암으로 이 년을 투병했다고 했다.

        극장에서 나오니 오후 6시 즈음. 아직까지 해가 남아 있다. 봄이 되니 이것 또한 좋다. 여름이 되면 해는 더 길어지겠지. 버스 타는 곳까지 걸었다. 요즘 헤드윅 뮤지컬 음반을 듣고 있다. 오만석이 부른 The Origin of Love를 제일 많이 듣는다. 옛날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등이 붙어 하나 된 두 소년, 돌돌 말려 하나 된 두 소녀, 소년과 소녀가 하나 된 그들. 제우스가 그들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너희 모두 반쪽으로 갈려 못 만나리. 영원토록. 그리고 다시 한 몸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우리들. 그건 우리들의 The Origin of Love. 

        걸어 나오다 일본 대사관에 걸려 있는 커다란 현수막을 보았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의 따뜻한 지원을 일본 국민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걸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대학로까지. '무산'은 함경북도에 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안개가 걷히듯 흩어져 없어진다는 뜻의 명사이기도 하다. 재산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옛날에 우리는 어땠을까. 등을 맞대고 있어 단 한번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까. 밧줄처럼 돌돌 말려 있었을까. '그것은 나의 슬픔. 그건 고통.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The Origin of Love. 언젠가 거리에서 승철을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인사를 건네야 할지. 그를 알아볼 수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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