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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수꾼 - 한 소년이 죽었다
    극장에가다 2011. 5. 4. 23:38



        이 영화에 대한 40자평을 보고 있다. 영화만큼 섬세한 평들. 나 역시 이 영화가 무척 좋았다. 나는 그 날 밤에 대해서 이야기해야지. 내게 어떤 사람과 어떤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큰 매개체는 함께 나눠 먹은 음식과, 그 날의 날씨, 공기의 흐름. 우리는 이대 후문 앞 필름포럼에서 이 영화를 봤다. 이대역에서 내린 나는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이대 교정을 걸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우산을 준비한 날이었다. 아니다, 오전에 비가 왔던가. 교정을 걸을 때 공기 가득 비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나무에 새싹이 돋아 있었고, 꽃이 피어 있었다. 바람이 조금 불었다. 우리는 커다란 장우산을 하나씩 들고 만났다. 한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밥도 나오고, 된장찌개도 나오고, 돼지고기도 나오고, 소고기도 나왔다. 고기를 싸 먹을 수 있는 채소들도 나왔다. 우리는 그걸 천천히 먹었다. 결국에는 무산되어 버렸지만 전주영화제 나들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미운 사람 이야기도 했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커피집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샀다. 극장에는 자그마한 달팽이 계단이 있었다. 작고 방음이 되지 않는 극장이었다. 그 곳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다.

         그런 대사가 나왔다. 우리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아니다, 이것도 대사가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일 지도 모른다. 영화 속 세 아이들은 어떤 터널을 통과한다. 영화는 그 길고 어두운 터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그 이전의 세 아이들이 아니게 되어버린다. 더 이상 기찻길에서 캐치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기찻길은 이제 세 사람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슬픈 말이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는 그런 노래였던 거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 동윤이 방에서 거실로 나올 때, 현재가 과거가 되고, 과거가 현재가 될 때. 그 마음 아픈 순간들.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그 장면을 제일 먼저 떠올릴 거다. 그 울컥하고 목이 메이던 순간을. 우리는 극장에서 나와 교정을 걸었다. 이전에는 혼자였으나, 지금은 둘이 된 길이다. 그 후에는 혼자가 될 지 모를 길. 돌아가는 길에도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삼층에 있는 조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맥주 한 병씩을 마주보고 마시다 헤어졌다. 나는 조금 걷다 중앙차선으로 건너가 파란색 271번 버스를 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한 소년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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