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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네, 고독한가? 그럼 별을 보게.
    모퉁이다방 2009. 9. 4. 00:30


        아, 오늘은 정말이지 우울한 날이었다. 오후 세 시에는 정말 참을 수 없이 짜증이 몰려왔다. 여섯시 무렵에 이렇게 집에 곧바로 들어가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에 보도자료에서 보았던 그 행사에 가자고 결심했다. 시집을 챙겨왔지만, 하루종일 갈까말까 망설였는데. 그리고 그 곳에 간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늘 내가 한 일 중에 유일하게 잘한 일이었다. <별은 시를 찾아온다>. 이건 시집인데, 올해가 세계 천문의 해란다. 그걸 기념해서 50명의 시인이 시를 썼고, 그 시들을 모아서 시집을 냈고, 오늘이 바로 그 축하파티 하는 날. 정독 도서관이니 슬그머니 가서, 김경주 시인의 낭송을 듣고오자 생각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하루종일 쩔어있었던 H씨가 아주 슬그머니 합류했다.

       정말이지 가길 잘했다. 안 갔으면, 집에서 내내 답답해하고 있었을 거다. 행사는 퍼포먼스에, 개회사, 시 낭송, 무용, 또 시 낭송, 노래, 마지막 시 낭송, 퍼포먼스로 이어졌는데, 모두 다 좋았다. 아(!), 거의 다 좋았다. 특히 시인들의 시 낭송이 참 좋았다. 별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검푸르스름한 하늘 아래 시를 읊는 사람이 있었고, 그걸 듣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라이브 연주와 함께 했는데, 기타 소리도 좋았고, 이름을 모르는 악기들의 소리도 좋았다. 어떤 이는 그게 별의 소리 같다고 했다. 샤르르르. 별이 흐르는 소리. 은하수의 소리. 사람의 소리도 좋았다. 사람의 소리는 성우 김상현씨가 낭송한 이백의 '술잔 들고 달에게 묻노라'와 함께 했는데 그걸 뭐라고 하지. '소리'라고 해야 하나. 정말 이백이 바다 같이 넓고 깊은 중국의 호수 위에 둥둥 떠서 술 한 잔을 걸치면서 읊는 것만 같았다. '지금 사람은 옛 달을 보지 못하였건만, 지금 달은 옛 사람을 비추었으리.' (팜플렛을 뒤져보니, 그걸 '구음'이라고 한단다. 입의 소리라는 건가.)

         시인들은 낭송 전에 어떻게 해서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주었는데, 그게 또 시 같았다. 우주에 갔다 돌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무엇보다 지구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이 시를 썼어요. 김경주 시인의 말이다. '여독'을 낭송하기 전에 기타 연주를 했던 최고은씨가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그 노래가 정말 우주에서 둥둥 유영하며, 저어어기 멀리서 아름다운 지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김경주 시인 사투리 들으러 간 거였는데, 사투리 안 쓰시더라. ㅠ) 어떤 시인은 지구를 아주 커다란 화분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 화분 안의 꽃이고. 어떤 시인은 추운 별을 생각했다고 했다. 그게 시인이 아는 한 명왕성이었고, 그 별에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싶었다 했다. 반대였던가. 내 기억이 이렇게 엉망이다. 

        그리고, 별이라며 커다란 정독 도서관의 나무 위에 매달아놓은 노란 끈이 흔들렸다. 연극배우 장용철씨가 자신의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때였다. 배우는 이게 별이라 했다. 끈은 노랗고 길다라기만 하고 빛나지도 않았지만, 오프닝 퍼포먼스에서부터 이게 바로 별이라 했다. 그걸 사람들의 팔에다, 옷에다, 가방에다, 마이크에다 달아주며, 이게 별이라 했다. 빛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데 별이란다. 나는 그저 끈이라 생각했다. 별이라 이름 부르는 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클로징 퍼포먼스에서 배우 분이 아이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하러 커다란 사다리를 놓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그 별이라 부르는 끈 바로 옆에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읊을 때, 밤바람이 소리없이 몰려왔고 노오란 끈이 흔들렸다. 스르르 소리도 없이 끈이 흔들렸다. 멀리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고, H씨와 나는 각자가 흠모하는 대상과 같은 장소에 앉아,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더라. 그게 끈이 아니라, 별이더라. 나무에 걸린 노란 끈이 밤바람에 흔들릴 때, 그게 별이 되더라.

        이건 배우 장용철씨 말의 패러디랄까. 그 분은 지난 달에 읽었다며 이런 구절을 우리에게 말해줬다. '자네, 고독한가? 그럼 책을 읽게.' 그리고 책의 자리에 다른 걸 바꾸어 넣으면 또 다시 완벽한 문장이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음악, 영화, 연극, 사랑 등. 그럼 나는, '자네, 고독한가? 그럼 별을 보게.' 그 곳에서는 목요일이라 그런가 (풉)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여줬다. 커다란 달도 보여줬다. 목성의 위성은 하이테크 펜으로 점 하나 찍은 것처럼 작았지만, 달은 정말 커다랬다. 커다란 달이 내 눈 앞에 펼쳐졌는데, 뭐랄까. 뒷 사람만 없었으면 5분을 그렇게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보고 싶었다. 달은 표면은 아름답더라. 그리고 정독도서관 자판기에는 크림커피가 있더라. 그러니, 다시. 자네, 고독한가? 그럼 달을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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