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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육장 쪽으로 - 이 책의 열 가지 장점
    서재를쌓다 2008. 3. 25. 18:11
    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문학동네


       작년 겨울,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렸다는 김애란 작가가 쓴 편혜영 작가에 관한 '작가의 초상 - 그녀에게 휘파람'의 일부분을 twinpix님 블로그에서 읽었다. 첫 책이 나온 편혜영 작가가 너댓번 만난 김애란 작가와 마주 앉아 이 책의 장점에 대해 열 가지씩 돌아가면서 말해보자는 글귀에서 피식 웃어버렸다. 이 글을 쓴 김애란 작가도, 그 말을 한 편혜영 작가도 귀여웠다. 두 사람이 돌아가며 책의 장점 하나씩을 이야기할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 편혜영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 생각했다. 

       며칠 전 도서관에 들러서 한국소설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그 곳에 내가 언젠가 찜해두었던 소설들이 서로 멀지 않은 자리에 꽂혀 있었다. 천명관의 <고래>, 한유주의 <달로>, 그리고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 <사육장쪽으로>는 그녀의 두번째 소설집이다. 창가 자리에서 첫번째 단편을 읽었다. 마음에 쏙 들었다. 도서관 카드를 내밀고 세 권 모두 대출해서 나왔다.

       나도 귀여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이제 내가 읽은 그녀의 두번째 책 <사육장 쪽으로>의 장점 열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돌려 말할 사람이 없으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얼쑤, 그러니 따위의 추임새를 넣어주길.

       하나, 표지가 좋다. 요즘 문학동네 표지는 대부분 마음에 든다. 회색빛 배경에 표제작 <사육장 쪽으로> 내용을 함축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달려오는 개가 너무 귀엽게 그려져 있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꼭 순한 돼지같잖아.

       둘, 작가 사진이 잘 나왔다. 짙은 연두빛 벽에 작가가 카메라를 향해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있다. 시선은 카메라 정면을 향하지 않고. 각도를 아는 작가다. 예쁘다. 72년생이라는데 무척 어려보인다.
     
       셋, 잘 읽힌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좋은 뜻이다.

       넷, 처음에 배치된 소설들 '소풍'과 '사육장 쪽으로'는 특히 좋다. '동물원의 탄생'도. 뒤에 배치된 소설들은 집중도가 조금 떨어졌다. 앞의 소설들이 반복되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소설집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동물과 놀이기구. 특히 동물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육장 쪽으로'의 아이를 물어뜯으러 달려오는 개의 모습이나 '동물원의 탄생'에서 도시를 배회하는 검은 늑대의 번득이는 누런 눈을 책을 읽으면서 분명히 마주쳤다. 섬뜩했다. 특히 늑대의 눈. 활자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정말 내 눈 앞에서 버티고 있는 늑대의 누렇고 반짝이는 눈과 마주했다. 늑대는 나를 보고 어슬렁 도심의 숲 속으로 사라졌다. 책을 놓치고 도망갈 뻔 했다.

       다섯, 이 소설집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짙은 안개를 뿌려놓았다. 단편 '소풍'은 앞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 길을 나서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 치 앞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이 안개일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집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짙게 가라앉은 나를 본다. 아무 표정없이 닭을 튀기는 나, 그런 내게서 나는 기름냄새, 지하철 출근길에 낡은 서류 가방을 잃어버린 나, 하지만 잃어버렸다 말하지 못하는 나. '소풍'의 여자처럼 오줌을 누워 안개를 걷어치우고 싶지만, 내 오줌으로 걷히는 안개는 너무나 작다. 안개가 걷히면 사람들은 닭냄새가 나고, 서류가방을 잃어버린 나를 몰라볼지도 모른다. 그저 내 오줌은 솟아오르는 아파트 빌딩 기둥에 숨겨져 올라가고 올라갈 뿐.

       여섯, 이런 문장은 작가 본인의 직접적인 생각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여자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주어와 서술어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라면 싫었다. 푸른 하늘처럼 맑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쓰는 아이가 싫었다. 장래에 연예인이 되겠다고 쓰는 아이도 싫었고, 장래희망이 없으니 아무거나 써달라고 조르는 아이도 싫었다.' 16페이지다. 나는 내가 혹시 푸른 하늘을 좋아하는 맑은 마음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지 뜨끔했다.

       일곱, 더러운 것들이 출동한다. 코끼리의 똥, 쥐, 여자의 토사물. 이 단어들이 나오면 몸을 긁적거렸지만 소설을 끝내고 나면 그것들이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내가 더 더럽게 느껴졌다.

       여덟, 옛날 하숙집 앞 닭집 아저씨가 생각났다. 아저씨가 바삭바삭하게 튀겨주었던 닭도, 물 하나도 안 탔던 탄산이 목에 탁 걸렸던 생맥주 500cc도. 늦은 밤,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지만 씩씩하게 참아냈다.

       아홉, 작가의 말이 좋다. 자신의 생시(生時)를 이야기 한 부분, 그리고 이 소설들의 생시를 이야기 한 부분.

       열, 작가가 좋아졌다. 첫번째 소설집을 찾아서 읽을 거고, 다음 그녀의 소설들도 나오는 즉시 읽을 테다. 읽으면서 무시무시한 소설을 쓰는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무시무시한 건 그녀의 소설이 아니라 그녀와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세상이였다. 뉴스를 틀면 소설 속보다 영화 속보다 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요즘 공포 영화를 보는 대신 뉴스를 본다. 그게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그녀의 소설에는 살인범이나 사기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침을 흘리고 살점을 뜯어내는 사육장의 개와 도시의 밤을 배회하는 검은 털의 번쩍이는 누런 눈을 가진 늑대가 등장할 뿐. 오히려 그게 낫다. 적어도 소설 속에는 늑대가 늑대모양을 하고 늑대같은 짓을 하니까.

       그래, 다시 한번 되뇌인다.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김상경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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