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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팔월에는 남해로 여름휴가를 조금 느즈막이 다녀왔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기차를 타고 여수에 가 렌트를 한 뒤 남해를 거쳐 통영으로 그리고 다시 여수로 돌아와 렌트카를 반납하고 기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이때 수도권에서 코로나가 급속도로 번지고 있어 엄청 조심하고 조심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러고 있을 줄, 그때보다 더 심해질 줄 상상도 못했네. 여행내내 비가 왔다. 심지어 여수에 내려간 첫날에는 태풍이 왔더랬다. 어쩔 수 없이 많이 다니지 못한, 이른바 숙소여행이었다. 일년치 자기계발비를 거의 이 여행 숙소에 다 썼다. 여수에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자그마한 개별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서 묵었고, 남해에서는 풀빌라에 묵었다. 방문을 열면 개별 바베큐장과 개별 수영장이 있었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 풍광이 아주 좋았다. 통영에서는 예전에 묵었던 에어비앤비를 다시 방문했다. 원래는 동생들도 내려올 거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왔다. 대신 엄마아빠와 넷이서 오붓하게 보냈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숙소 바로 앞에 바베큐를 해 먹을 수 있는 옥상이 생겼더라. 시장에서 조개를 사와 구워 먹었더랬다.
여수에서 창밖으로 몰아치는 태풍을 마주하며 한 잔 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런 말을 했더랬다. 우리가 아이 없이 둘이서 잘 살아나가려면 앞으로 많이 노력해야 할 거라고. 같은 취미도 만들고 등등. 나는 왠지 그 말이 좀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은 정말 좋지만, 앞으로 긴 시간 우리가 잘해 나갈 수 있을까, 변함없이? 남해에서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들린 커피집에서 가까운 곳에 기념품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아, 기념품가게는 그냥 넘길 수 없지. 찾아가서 파스텔 그림의 남해엽서와 남해지도가 그려진 민트색 마그넷을 사왔다. 통영에서는 숙소 옥상에서 한창 바베큐를 하다 내가 이제 그만 들어가자 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엄마가 기가 막힌 타이밍이라고 했다. 아빠는 그전에 뭔가 사온다고 나가서 그 비를 잔뜩 맞고 온몸이 푹 젖어 돌아오고.
요즘은 단체사진의 중요성을 느낀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단체사진을 꼭 찍어두어야지.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삼각대도 하나 사두었다. 시간이 너무 확확 흐르니까 그때그때 우리들의 모습을 남겨두지 못한 게 아쉽다. 이때도 엄마아빠랑 남편이랑 넷 사진을 남겨두지 못했네. 숙소 옥상에서 풍성했던 하늘구름과 함께 찍었으면 근사했을텐데. 다음번 여행에는 꼭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