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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에서는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콘도를 빌렸다. 숙소를 예약할 때 찾아보니 와이키키 쪽에는 호텔들이 오래되어서 시설에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콘도로 예약을 했다.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주방이 있었고 침대가 두 개였다. 테라스도 있었다. 테라스성애자는 대만족. 호놀룰루에서도 실렁실렁 다녔다. 떠나기 전날 정신없이 쇼핑하느라 시내 매장 안에 있은 날을 제외하고는 하와이에서 매일 일몰을 봤다. 콘도 주인 분이 추천했던 남쪽에서 시작해 해안도로를 빙 둘러 북쪽으로 가려던 계획은 길을 잘못 들어 실패했다. 그 반짝반짝 빛나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를 놔두고 도로 밖에 없는 섬 중간을 가로질러 갔다. 유명한 푸드트럭 갈릭새우요리를 먹으려고 땡볕에 한참을 서 있다가 어디 가서 이렇게 줄 서서까지 음식은 먹지 말자 다짐했고, 오바마가 좋아했다던 식당에 가서 로코모코를 시켰는데 너무 양이 많고 너무 느끼해서 둘이 겨우 나눠 먹었다. 앱에서 완전 맛집으로 추천해 준 와이키키 타코집에 들어갔는데 토핑 종류가 너무 많아 둘이 어리버리하게 서 있다 제일 기본 맛으로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정인이가 강추했던 브런치 집은 계속 늦잠을 자고 늦게 움직이는 바람에 가보질 못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지만 몇 번 다투기도 했었다.
그래도 매일 맥주를 마셨고, 함께 있었고,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작은 소품샵의 소품에 꽂혀 별 게 없는 자그만 마을에 가기도 했고, 숙소 근처에 푸드트럭 식당을 발견하고 커다란 맥주를 사서 이것저것 시켜 먹기도 했다. 기둥이 어마어마했던 오래된 나무들이 길가에 즐비했고, 높은 층 숙소에서 바라보는 낮과 밤의 풍경도 근사했다. 그때는 방귀를 트지 않았던 때라 새벽에 방귀가 마려워 테라스로 나왔는데 저 멀리서 해돋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시간 건물들 빛깔도 구름들도 그 사이사이 새어나오는 아침해도 너무 근사해 핸드폰을 가져와 사진을 찍다 남편을 깨워 데리고 나왔다. 너-무 멋지지? 남편은 비몽사몽에 으...응 답하고 들어가고. 친구들과 가족들 선물 사는 재미도 쏠쏠했다. 파타고니아 매장에서는 친구 남편이 예전에 사서 애용한(이 매장에서만 파는 거라고 했다), 이제는 많이 낡아져 버린 모자를 선물하려고 찾아서 계산하려는데 직원이 '라스트 원'이라고 말해줘서 신났었다. 파타고니아 매장 옆에 있던 보석집에서 2+1으로 산 진주 귀걸이는 동생의 애용품이었다. (지금은 잃어버렸다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에는 늦게까지 하는 바를 찾아갔다. 야외 자리에 앉아 맥주를 시켰다. 라이브 공연을 하는 가게라 안쪽에서 생음악이 계속 흘러나왔다. 음악도, 머리 위 야자수도, 눈앞의 와이키키 해변도, 시원한 맥주도, 선선한 날씨도 모두 좋았다. 둘이서 너무 좋다는 말을 계속 해댔다. 그리고 쪼리를 벗고 밤파도소리를 들으며 와이키키 모래사장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가 묵은 콘도에는 보증금이 있었는데 퇴실할 때 아무 이상이 없으면 그 보증금을 돌려줬다. 그동안 운전하느라 수고한 남편에게 남은 보증금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레고를 마음껏 사라고 했다. 지금 군포집 책장에는 그때 산 레고 집과 공룡과 차 비스무리 한 게 전시되어 있다. 아, 마무이 브랜드 맥주가 제일 맛있었는데 그건 하와이에 다시 갔을 때만 맛볼 수 있겠지? 맥주 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