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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가다 2021. 5. 4. 14:34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출을 본 날이 있었다. 마우이 할레이칼라 국립공원에서였다. 슬렁슬렁 하루에 한 가지만 계획하는 여행이었다. 이 날은 일출이었다. 가이드북에 아주 캄캄한 때에 올라가야 하고 초행길로는 위험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남편이 천천히 올라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하지 않은 게으른 자들. 할레이칼라 국립공원은 일출 시간에 하루에 출입할 수 있는 차 수가 제한되어 있었다. 결국 숙소 한 켠에 마련된 투어 예약 부스에 가서 단체버스 예약을 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새벽 3시 즈음 숙소 앞에 버스가 온다고 했다. 한여름이었지만 산 정상은 무척 춥다고 해 패딩을 챙겼다. 버스는 약속된 시간에 와 있었고 미국인 가족이 한 팀 더 탔다. 휴게소 같은 곳에 가니 화장실에 다녀올 사람은 다녀오라고 했고 커피를 마실 사람은 사 마시라고 했다. 이제 차를 바꿔타고 산으로 올라간다고. 가이드는 하와이를 떠난 적 없다는 할머니였는데 열정이 어마어마해서 쉴새없이 하와이와 그 전통에 대한 사랑을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했다. 영어가 짧은 나는 거의 못 알아들었지만 그 열정만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내리기 전 정차한 버스 안에서 가이드 할머니는 정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다시 모일 시간을 알려줬다. 우리는 패딩을 단단히 챙겨 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긴 바지에 패딩까지 입었는데도 몸이 오돌오돌 떨렸다. 벌써 일출 보기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선점하고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요히 순간을 기다렸다. 소리를 낮춘 대화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만 들렸다.    

     

     

     

     

     

      죽기 전 일생을 되돌아봤을 때 손꼽을 정도의 최고의 광경, 정도는 아니였지만 가슴 떨리게 만드는 감흥이 있었다. 처음 보는 구름이었고 처음 보는 빛이었다. 무엇보다 이제 매일매일 함께 살아갈 사람과 이렇게 멀리 날아와 이렇게 높이 올라와 이렇게 오돌오돌 떨면서 보는 일출이라니. 옆사람 손을 꼬옥 잡게 되더라. 잘 살아보자는 다짐 같은 것도 하게 되더라. 새벽부터 일어나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투어에 아침식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이드 할머니의 열띤 하와이 사랑을 끊임없이 들으며 도착한 골프장 건물의 식당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미국식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새벽에 처음 탔던 버스로 바꿔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작은 버스는 친절한 할아버지가 운전해주셨는데 숙소 근처 좋은 식당을 물어보니 한 군데를 추천해주셨다. 그 곳은 원더-풀이라면서. 이 날 저녁 그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마우이에서 마지막 밤이었다. 과연 할아버지의 추천대로 음식도 맛있었고 술도 맛났다. 그동안 캔으로만 마셨던 마우이 로컬맥주가 생맥주로 있었다. 무엇보다 식당 앞 풍경이 무척 좋았다. 처음 메뉴판을 받아들고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마셔버렸다. 그래서 더 행복해져 버렸고. 저녁을 먹으면서 일몰을 볼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그 풍광이 너무 멋져서 밥 먹다말고 자꾸 식당 앞 바닷가로 뛰쳐 나갔다. 알콜이 두 사람의 몸에 그득하게 들어가니 우리는 분명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운명인 것 같았다. 해가 지고 계산을 하고 손을 잡고 숙소까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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