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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행지에서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좋았던 여행들을 떠올려 봤는데, 그 기억들에 항상 좋은 숙소가 있었다. 늦은 밤까지 와인을 마셨던 경주의 호텔은 폭신폭신했고, 위치를 극단적으로 잡아 하루 반나절을 숙소로 이동하는 데 써야했던 제주에서도 마침내 찾아간 숙소가 무척 좋았다. 테라스가 있었고, 나무가 많아서 어마어마했던 택시비가 아깝지 않았다. 에어텔로 예약했던 포르투갈의 숙소는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리스본의 숙소는 근사한 거리가 내다보였고, 훌륭한 야경이 함께 했다. 역시 조그마한 테라스가 있었다. 포르토의 숙소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아주 커다란 나무가 바로 앞에 있었다. 커다란 창문이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창문을 활짝 열고 손을 아-주 길게 뻗으면 나무에 손가락이 닿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나무가 가까이 있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숙소 구석에 있었던 딱딱한 벤치같은 긴 의자에서 밤이며 낮이며 보았다. 호텔 시설은 낡았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오래된 것들이라서. 낡았지만 깨끗했다. 비싼 숙소가 아니라 다정한 숙소들을 기억하고 있더라. 내가. 바람이 통하고, 나무가 있고, 멋진 풍경이 있는 곳.
<컨택트>를 봤다. 좋아하는 에이미 아담스가 나왔고, 그녀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그녀의 나이가 느껴졌다. 배역의 특성상 아주 옅게 화장을 했더라. <줄리 앤 줄리아>를 보고 그녀가 너무 좋아져서 프로필을 찾아봤는데, 나보다 언니여서 놀랐다. 사실 요즘 영화나 티비에 나오는 왠만한 사람들은 나보다 동생이거든. 흑흑- 언니여서 좋았다. 동안이라고 줄곧 생각했는데 <컨택트>를 보니 나이가 보이더라. 아무튼 영화는 좋았다. 얕은 배멀리를 하는, 근사한 우주선을 탄 기분이었다. <컨택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집이었다. 에이미 아담스가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영화의 초반부에 잠시 나왔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에이미 아담스는 UFO가 출현하고 난 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드넓은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드넓은 거실이 있었다. (한 달 전에 본 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거실의 삼면이 통유리였다. 커튼이 있었다. 필요할 때는 커튼을 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열어두는 것 같았다. 드넓은 거실에 걸맞게 커다란 소파가 있었다. 그 집의 벽들이 유리인 이유는, 나중에 한밤 중에 나타나 에이미 아담스를 헬기로 데려가야 할 때의 시각적인 효과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이 집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UFO가 출현하지 않았을 때의 에이미 아담스의 일상을 상상해봤다. 그녀가 온전히 혼자인 삶을 살고 있을 때의 일상. 그녀는 새벽녘에 일어나 닫아두었던 커튼 전체를 칠 것이다. 자연이 가득한 전원의 풍경이 한 눈에 드넓게 들어올 것이다. 스탠드 하나만 켜놓고 어제 읽다만 책을 삼십여 페이지 정도 읽어나가다 보면 아침이 올 것이다. 주위가 서서히 밝아질 것이다. 책을 놓아두고 그 풍경을 잠시 바라보다,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할 것이다. 빵을 데우고, 계란 후라이에 베이컨 한 줄, 그리고 갓 내린 따끈따끈한 커피. 아침을 챙겨먹고, 차를 운전해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동료들과 혹은 혼자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것이다. 늦은 오후가 되면 퇴근을 할 것이다.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주위는 새벽과는 다른 짙은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할 것이다. 간단하게 저녁을 만들어 먹고, 와인을 한 잔 할 것이다. 커튼을 닫고, 침실로 돌아와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티비로 뉴스를 볼 것이다. 그러다 잠이 들 것이다. 전화통화나 스마트폰이 없는 그런 조금은 쓸쓸하지만 충만한 일상을 그 집을 배경으로 상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