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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내려와 북촌으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우리는 ㄷ자 한옥을 리모델링한 술집에 앉아 쏟아지는 햇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낮술을 마셨다. E는 같은 술을 계속 마셨고, 나는 매번 다른 술을 시켰다. 우리는 극장에서 처음 만났다. E가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를 했다. <싱글라이더>를 봤는데, 참 좋아서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엔 궁금했는데, 이제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E는 한번 봐 보라고 했다. E는 전도연과 북유럽의 풍광이 나왔던 <남과 여>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나를 탓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집에서 조그만 티비화면으로 <남과 여>를 보다 정말 후회했다. 배우나 이야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저 북유럽의 새하얀 숲은 커다란 스크린 화면으로 봐야했다. E는 <남과 여>를 사람이 거의 없는 극장에서 보았고, 그 덕분에 더 좋은 영화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싱글라이더>를 권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평일 밤 시간에 가서 조용히 보라고. 그러면 분명 울 거라고.
그 말을 듣고 극장 시간표를 검색했다. 자주 가는 극장에서 하루에 딱 한번 상영을 하더라. E와 헤어지고 바로 극장에 갔다. E가 권한 평일 밤 시간도 아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맥주를 마실 때, 나는 무심결에 반전이 무엇 아니냐고 물었는데 E가 그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식스센스>의 반전에 대해 이야기했더랬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E에게 영화의 반전을 제대로 이야기했고, E가 곧 영화를 볼 나를 배려해 엉뚱한 이야기를 해댔던 걸 알았다. 고마운 E. 그렇지만 너무 뻔한 반전이었고. 그렇지만 나는 울었다. 예상한 결말이었는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소리내서 훌쩍거리고 있으니 옆옆 좌석에 앉은 남자가 대놓고 쳐다봤다. 너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우냐는 느낌으로. E의 말대로, 내가 사람이 없는 평일 밤 시간대에 커다란 스크린을 앞에 두고, 양 옆으로 아무도 없는 중앙 자리에서 영화를 보았다면, 그렇게 보고 나와 집까지 추운 바람을 마주하고 걸어왔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 영화를 권했을 것 같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