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바이북'에 해당되는 글 2건

  1. 건축가를 만나는 시간 2 2016.09.26
  2. 도쿄의 북카페 2 2014.08.02




   어떤 날에는 내 삶이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또 어떤 날에는 내 삶이 이모양이꼴로 여겨진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책도 읽고, 극장에도 간다. 요즘은 한동안 또 이모양이꼴 모드가 되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건축가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그를 만나고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왔는데, 만나러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이라는 건축가는 민머리에 저음의 목소리가 무척 좋은 사람이었다. 어떤 단어들을 굉장히 부드럽게 발음했는데, 그 톤이 참 좋았다. '건축가는 무슨 생각으로 집을 지을까?'라고 쓰인 화면을 띄어 놓고, 실은 이 중간에 '서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된다고 했다. '건축가 서현은 무슨 생각으로 집을 지을까?' 그리고 자신이 설계한 세 채의 집을 소개해줬다. 세 채의 집을 소개해주는 척 했지만, 사실은 세 명의 건물주를 소개해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 날, 세 명의 건물주를 소개받았다. 서현은 설계를 의뢰를 한 사람의 특징을 충분하게 파악한 뒤, 그에 맞는 건물을 설계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한 건물의 건물주는 요구사항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모르고선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건축가는 그를 데리고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에 가서 6시부터 11시까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단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사람을 알 수 있었고, 그이에 어울리는 설계를 할 수 있었단다. 그이의 집에는 동그란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은 365일 모두 달라서 어떤 날은 정말 동그랗고, 어떤 날은 비스듬하고, 어떤 날은 하트를 만든다. 그는 감격하며 그 집에서 살아가고 있단다. 그와의 궁합, 가치 있는 것. 건물주와 이야기해보면 그는 이것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관념이 다른 사람의 건물은 절대 설계할 수 없다고 했다.


  눈을 뜨고 보면 건축가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단 하나의 빛도 허투로 만든 게 없다고. 우연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치밀하게 계산된 빛이라고. 강연을 들으러 온 어떤 분이 질문하셨다. 어떤 건축소재를 가장 아끼냐고. 건축가는 말했다. 어떤 건축소재에도 거부감이 없다고. 그렇지만 유리라는 소재를 무척 아끼고, 잘 활용하고 싶다고 했다. 유리는 빛과 만나면서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고, 비물질적인 느낌을 선사하는데, 그것에 매료되어 있다고 했다. 유리를 잘 활용하고 싶어서 지금도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하셨다. 건축의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나요? 건축가는 그런 거 없는데, 하면 소탈하게 웃더니, 무작정 걷는 걸 좋아해요, 라고 말했다. 잠실에서 살고 있는대 학교인 한양대까지 무작정 걸은 적도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걷기는 굉장히 좋은 생각의 도구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너무 좋아해요.


   이 말을 건축가를 만난 그 시간에 메모해뒀는데, 분명 그가 한 말일 텐데, 무슨 말의 끝에 나온 말인지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 뭐였을까. (집을 짓는 일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그 사람이 그 집을) 너무너무 좋아해요. (유리를) 너무너무 좋아해요. 뭐든 간에 나는 저 '너무너무'라는 말에 마음이 동해서 저 말을 적어두었다. 그리고 나도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주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어 보자고 다짐하면서 불광천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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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북카페

from 서재를쌓다 2014. 8. 2. 08:16


 

   상암동에 맥주를 파는 작은 북카페가 있다고 해서 7월에 갔었다. 상암동 지리를 잘 몰라 조금 헤맸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해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이 책 저 책을 구경하다가 요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서점의 소개글을 읽고 괜찮네, 생각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알딸딸해질 무렵 카페를 나오면서 결국 읽고 있던 책을 그대로 샀다. 나중에 이런 카페를 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여름밤.

 

 

 

 

  

    카페를 나서려는데, "이거 스테디셀러인데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은 정말 좋아요."라며 나를 붙잡는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돌아갈 생각 없이 눌러앉아 있자 푸념을 늘어놓는 웨이터. 그러자 나이 지긋한 다른 웨이터가 '사람은 누구나 밤늦은 시간까지 자기를 감싸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단편이다. 주인의 철학이 담긴 카페에는 정직함과 성실함이 있다.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웨이터가 말하는 카페가 어딘지 모르게 이하토보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p,21, 이하토보

 

   여행 관련 서적들을 들이게 된 것은 주인 부부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행광이어서다. 진열된 책들 중 '파리 책장'에는 <지구를 걷는 법>부터 트뤼포의 <영화독본>, 프랑스 가정 요리와 인테리어에 관한 책, 프랑스 문학, 거기다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까지 꽂혀 있다. 요즘은 인터넷과 가이드북을 통해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후치가미 씨는 소파에 몸을 맡기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누구라도 근사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책의 진열에 공을 들였다.

- p. 25, 트래블 북스 앤 커피 캣츠 크래들

 

   '북카페 괴담'을 들어본 적 있나요. 직원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 서가에 놓인 책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는 겁니다.

   늘어나는 것은 대체로 카페의 단골손님인 작가나 만화가들의 소행이겠지요. 자주 가는 카페에 자신의 책을 몰래 끼워 놓는다나요.

    직원 허락 하에 카페의 책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작은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근처에 사는 노신사가 산 지 얼마 안 된 책을 가지고 와서 카페 서가에 끼워두고는 카페를 방문할 때마다 야금야금 읽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책을 맡겨두는' 셈이지요. 책장에 진열된 옅은 색깔의 책들 중에서 그가 끼워놓은 실용서를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만큼 조금 튀더군요.

- p. 34, 북카페의 체온

 

   THESE의 매력은 책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부터 아는 사람만 아는 진귀한 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텐더들이 좋아하는 책들로 구성돼있다. 호감이 가는 부분이다. "손님들에게 권하기 쉬운 책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그렇다. 독서 바의 매력 중 하나는 바텐더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세계관을 한결 넓힐 수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위스키를 마시다가 "이게 스코틀랜드의 스카이 섬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졌어요."라는 바텐더의 이야기를 들으면 책장에서 그곳의 여행기나 지도를 찾아본다. 그러고나면 스카이 섬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이 책에 어울릴만한 칵테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상상했던 칵테일이 나올지, 아니면 생각지 못한 조합의 오리지널 칵테일이 나올지.

- p. 72, 테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주당들의 바람 중 하나는 '얌전히 취하게 하소서'이다. 맛있게, 즐겁게, 함께한 이들도 모두 유쾌하게, 다음 날 아침도 상쾌하게.

   항상 얌전히 취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다. 그런 식으로 영리하게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주당'이라 불릴 만큼 술을 마시진 않을 테니까.

   맨 정신일 때 그렇게 얌전히 취하는 장면이 그려진 소설을 읽으면 한없이 부러워진다. 반대로 만취해 엉망진창이 된 이야기를 읽으면 '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구나'하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늘 어찌되었든 한 잔 걸칠 나에게 책 속에 등장하는 술은 한없이 따뜻하다.

-p. 90, 주당의 마음을 읽는 책

 

    이 가게에서는 비영리 민간단체 NPO법인 자립생활 서포트센터가 제공하는 '고모레비커피'(*고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의미한다)'를 판매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두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로스팅.브랜딩한 커피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북카페의 매력이자 역할일 것이다.

- p. 99, 고엔지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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