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행'에 해당되는 글 2건

  1. 여수 거쳐 순천 4 2017.07.27
  2. 전주영화제 8 2017.05.02

여수 거쳐 순천

from 여행을가다 2017. 7. 27. 21:37


    지난 5월, 아버지 칠순을 맞이하여 여수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평생을 경상도에서 보낸 아버지는 전라도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도 말했지. 전라도에 와서 음식을 먹는데 신세계였다고. 우리는 여수에서 만나 점심으로 장어와 갈치를 먹고, 저녁으로 돼지갈비를 먹었다. 야식으로 삼치숙성회도 먹었다. 다음 날 순천으로 넘어가서는 꼬막정식을 먹었다. 요즘 아버지는 육고기가 좋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이번에도 역시 돼지갈비가 제일 맛있었다고 하셨다. 진짜 맛있는 돼지갈비집이었다. 좀 불친절하긴 했지만.

   순천에서는 순천만생태공원도 가고, 국가정원도 갔다. 생태공원에서는 가볍게 돌아다니기 위해 짐을 락커에 넣어뒀는데, 핸드폰도 넣어버렸다. 나중에 걷다가 알았다. 핸드폰을 안 가지고 왔다는 걸. 기억해두기 위해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대는 나는 잠시 망설였다. 다시 입구로 가서 가져올 것인가. 그냥 핸드폰 없이 걸어볼 것인가.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기가 막힌 풍경을 볼 때마다 이걸 찍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안했지만, 마음에 담아두자, 담아두자 생각하며 걷다 보니 사진으로 남기려고 애쓸 때 보다 더 많은 것이 보였다.

   습지가 내려다보이는 공원 데크 길에 가만히 서서 수많은 짱뚱어와 게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처음에는 습지의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게들이 샤샤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짱뚱어가 짱뚱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도 들렸다. 그 많은 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지만 아, 좋네, 라고 생각했다. (다시 핸드폰을 되찾은 나는 또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 나갔다! 읔-) 마음이 어지러울 때, 어릴 때 즐겨 봤던 쌍둥이 자매가 나온 애니메이션처럼 공간이동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간이동에다가 시간이동까지 되면 좋겠다. 그러면 풀들이 쏴아거리고, 게들이 샤샤거리는 5월의 그 순천생태공원으로 이동할 거다. 

   우리는 밤에 공원을 거닐다가 여수밤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설정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아버지는 다른 사진 속 자신은 표정이 어둡고, 너무 할아버지 같다며 싫어하셨는데, 이 사진은 좋다고 하셨다. 아버지 표정도, 엄마 표정도, 내 표정도, 동생들 표정도, 여수밤바다 표정도, 다 좋다고. 간만에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고 하셨다.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잠을 함께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따금 나는 황정은 소설 속 모자로 변해버리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황정은이 많이 아플 때 다 큰 딸을 업고 다녔다던 아버지 이야기도.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버지가 작아지고 작아지다 어느 날 개미 만큼 작아져서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내년 아버지 생신에는 더 좋은 곳에 가야지.



 

,

전주영화제

from 여행을가다 2017. 5. 2. 22:08


   올해도 전주영화제에 갔다. 소윤이가 1월에 전주로 내려갔고, 4월의 시옷의 모임이 전주에서 있었다. 우리는 함께 내려가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고, 맥주를 마시고, 밤길을 함께 걷었다. 여행 중에도 즐거웠지만, 여행이 끝나자마자 그리워지는 것이 많아졌다.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가다가 9와 숫자들 공연을 우연히 발견!

단톡방에 올려 각자 갈길을 가던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런던에 있던 민정이는 이런 감동적인 선물을 해 주었다.

보자마자 살 수밖에 없었다구, 언니꺼야, 라는 말을 해준 고마운 민정이.




전일슈퍼 맞은편 가맥집에서 모기향이 너무나 좋다고 감탄을 연발하는 시옷.




우리도 무언가 적자.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자! 중국사랑 쁘띠동환님이 함께한 4월의 시옷.




봄이의 제안에 이런 아름다운 등도 마주했다.




그야말로 아름다웠던 빛.




등나무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아주 잘 나왔다

시옷 인생샷 나옴.

 



   해가 지기 전부터 하루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여러 번 옮기며 맥주를 마셨고, 조림이와 소윤이랑 소윤이가 예약해둔 숙소까지 걸었다. 다들 피곤하고 무거워서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을 힘들어했는데, 다음날이 되니 정말 거짓말같이 근사한 추억이 되어 있더라.




   잠에서 깨어날 민정이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내려 마시고, 어제 미처하지 못한 책 얘기를 했다. 4월의 시옷의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었는데, 참 좋았다. 조림이도 좋았다고 했다. 책을 읽자고 제안한 소윤이는 다행이라고 말했다.




조림이가 언니가 포스트잇 붙힌 부분 읽어줘요, 라고 말했고

나는 조림이는? 물었다.

우리는 각자 좋았던 부분을 읽었고, 그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침부터 모주 마시는 녀자들.

순천으로 떠날 거면서 모주를 살 수 없냐고 물어보는 녀자.




소윤이는 전주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콩나물 국밥이 최고라고 했다.




조림이는 계속 이 모주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맛보이고 싶다고 했다.

우정식당은 모주를 직접 만든다고 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영화를 기다리며 소윤이랑 가진 다정한 커피타임.

소윤이는 초록색 일기장을 보여줬다.

이런저런 지난 일기들을 보여주며, 언니, 나 이랬대, 하며 웃어댔다.

나는 소윤이의 성실함과 밝음이 새삼스레 부러웠다.




이번 영화제에서 세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순위를 매겨보자면,

친애하는 우리아이 > 시인의 사랑 > 돌아온다.

<친애하는 우리아이>는 계속계속 생각이 난다.




   마지막 영화를 보고 전날 가지못한 전일슈퍼에 혹시나 영업하나 전화를 했더니 한단다. 휴무일인데, 오늘은 한단다. 포장만 해가려 했는데, 가게 안에 사람들이 한 테이블 밖에 없는 걸 보니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포장해갈 것도 시키고, 혼자 먹을 것도 시켰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슈퍼 한 구석에 앉아 혼자 맥주를 마시고 황태를 먹었다. 혼자서 빠르게 알딸딸해지는 게 외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맥주를 마시며 엽서도 썼다.




버스 시간이 남아 걷다 보니 노송광장.




아, 좋네.




전날 전주돔에서 얻었던 맥주를 숙소 냉장고에 넣어뒀는데 잊지 않고 가지고 나왔다.

광장 한켠 벤치에 자리잡고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두번째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걸었다.




이팝나무.




전주는 무척 더웠다. 이제 여름인가 보다.




이 초록 앞에서는 얼마 전에 사둔 책이 생각이 났다.

함께 읽는 친구는 그를 '산책자'라고 말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까지 걸어갔는데 출발 3분 전에 버스 앞에 도착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숨이 몇번이나 끊어질 뻔 했고. 글렀어, 나는 버스를 놓치고 말거야, 몇번이나 포기를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고 뛰고 또 뛰어 버스를 놓치지 않은 나에게 박수를! 그 뒤의 버스들이 다 매진이라 죽어라 뛸 수 밖에 없었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목이 엄청 말랐고,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두 개나 샀다!




그러니까, 잘 보고, 잘 먹고, 잘 만나고, 잘 자고, 잘 걷고, 더불어 잘 뛰고 왔다는 이야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