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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요일의 기록 3 2016.06.21
  2. 모든 요일의 기록 7 2015.07.30

화요일의 기록

from 모퉁이다방 2016. 6. 21. 22:38



   김중혁은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 만화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 만화책은 무조건 사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책을 소유하고 있는 건, 그 책이 담고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걸으면서 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이 말이 참 좋았다. 그 책을 소유하고 있는 건, 그 책의 세계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펼쳐볼 수 있는 세계. 이 크지 않은 신국판 즈음의 책에 내가 좋아하는 세계가 잔뜩 담겨 있는 것. 


   오늘 나는 회사에서,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이 쓴 세계를 줄곧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집에 가면 바로 그녀의 세계로 정확하게 빠져들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1층의 쌀국수 집에서 사온 스프링롤을 먹고, 어제 먹다 남겨둔 오잉도 먹고, 우유도 한 잔 마시고, 손과 발과 얼굴을 씻고, 팩을 하고, 수분 크림을 바르고, 설거지를 하고, 방을 한번 닦고 난 뒤, 방에 몸을 바삭 대고 오늘 내내 그리워했던 세계를 불러냈다. 그 세계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오늘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던 말. 팔십팔페이지, 박웅현의 말.

 

   "민철아, 여기가 지중해야. 봐봐. 여기가 지중해야. 다른 곳에 지중해가 있는 게 아니야."

   "알아요. 팀장님이랑 같이 카뮈도 김화영도 다 읽었잖아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 가을에, 이 은행잎에, 이 노란빛에, 이 비에, 이 술에. 여기가 지중해죠. 지금, 여기가. 알아요.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왜 가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요. 근데 가야 할 것 같아요. 정신의 지중해는 알 것 같은데, 육체의 지중해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요. 저는 지중해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요."

   "그럼 갔다 와. 회사는 그만두지 말고. 갔다 와."

   "아니 그게 아니라..."

   술을 마셨고, 가을이었고,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고, 노란 조명과 그 은행잎이 만나서 세상이 다 노랗고, 예뻤고, 선선했고, 기분이 좋았고, 젠장, 이곳이 지중해였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보다 더 오롯이 살 수는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지중해가 무슨 상관인 건가. 여기가 지중해인데. 내가 지금 좋은데. 팀장님 말이 다 맞았다. 그런데 나는 가고 싶었다. 동시에 안 가고 싶었다.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나는 흔들렸고, 팀장님은 잡았고, 갔다 오라고 말하고, 얼마든지 갔다오라고 말하고, 술은 맛있고, 나는 흔들 흔들 계속 흔들.

   그리고 나는 지중해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있는 휴가를 다 끌어모르고, 토요일, 일요일을 있는 대로 갖다 붙였다. 3주 반, 그러니까 거의 한 달에 가까운 휴가가 생겼다. 모두 지중해에 쏟아부었다. 혼자서 카뮈의 무덤이 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과, 김화영이 70년대에 유학을 했다는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와 아를과 니스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결국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결혼을 했다.

- <모든 요일의 기록> p.88~89



   아, 내가 열살만 어렸음 좋겠다. 카뮈의 세계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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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from 서재를쌓다 2015. 7. 30. 23:32

 

 

 

    동생은 박웅현 빠순이다. 어디서 박웅현을 알아와서는 <책은 도끼다>를 매일 들고 다니며 읽었다. 모든 부분이 좋다고 했다. 밑줄을 얼마나 그었는지 모른다. 어느 날은 박웅현이 나온 팟캐스트를 같이 듣자고 했다. 집에서 둘이서 낮술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술도 들어갔으니, 좋다고 듣자고 했다. 박웅현이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건 우리 둘에게 필요한 거였다. 내가 말했다. 다시 들어보자. 방금 자존감 부분. 다시 들었다. 다시 들어도 좋았다. 다시 들어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거였다. 동생이 물었다. 한번 더 들을까? 그렇게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가 우리는 그 부분을 녹음하기로 했다. 동생은 무슨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들을 맥주를 마시고 돌아오는 어느 쓸쓸한 귀가길에 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 밤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 번의 시도 뒤에 우리는 말끔히 '자존감'을 녹음했다. 그 파일은 결국 맥주를 잔뜩 마신 쓸쓸한 귀가길에 딱 한 번 듣고, 유유히 사라졌다.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 이것저것 지우다 그 파일인 줄 모르고 삭제해 버렸다.

 

   어쨌든, 동생은 박웅현 빠순이다. 그래서 이 책도 샀다. 언니, 박웅현이 추천한 책이라는데 혹시 알아? 나는 모르겠는데, 라고 했고, 동생은 바로 주문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동생은 그때 깁스 상태라 회사가 끝나면 늘 집에 왔고, 덕분에 나도 집순이가 되어 동생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지금은 깁스를 풀었다! 나는 이제 동생의 손발이 아니다!) 아무튼 깁스 상태여서 티비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일 말고 별다른 일이 없었던 동생은 이 책을 야금야금 읽다가 어느 날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언니가 딱 좋아할 책이야. 리스본 얘기도 나오고. 꼭 읽어. 그 날 이후에 하루에도 몇번씩 말했다. 읽었어? 읽고 있어? 아직도? 읽으라니까. 읽고 있다고? 좋지? 읽었고, 좋았다. 동생의 말이 맞았다. 내가 딱 좋아할 책이었다. 얼마 전에 다녀온 리스본 얘기도 나왔다. 사실 이 책은 한 카피라이터의 오래된 일기인데,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인데, 나는 거기서 나를 봤다. 내가 보였다. 이상했다. 이 카피라이터의 일상 이야기가 내게 위안이 됐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행복했다. 슬프기도 했다. 즐겁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런 책이다. 좋은 책. 그래서 나를 닮은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 동생이 나한테 계속 읽으라고 한 이유가 서문만 읽어도 이해가 되는 책. 그러니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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