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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페이에서 먹은 것들
    여행을가다 2014. 12. 25. 13:27

     

     

     

     

     

     

     

     

     

     

     

     

     

     

     

     

     

     

     

     

     

     

     

     

     

     

     

        대개 귀국해서 한 달이나 두 달쯤 지나고 나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경험적으로 그 정도 간격을 두는 것이 결과가 좋은 것 같다. 그 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굵은 라인이 형성된다.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그 이상 오래 내버려 두면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 많아 문제다. 모든 일에는 어디까지나 '적당한 시기'라는 것이 있다. 

    - 7쪽, <하루키의 여행법>

     

     

        이 구절을 읽은 뒤로부터 여행기는 한두 달 정도 지나서 쓰는 것이 좋다, 는 하루키의 여행기법을 실천해보려고 하고 있다.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만이 떠오르는, 잊어버리는 것도 중요한 일인 하루키의 여행기 작성법. 과연 잘 되고 있는가,는 잘 모르겠다. 11월 1일부터 5일까지 타이완 타이페이에 있었다. 어쩌면 친구와 둘이 떠나는 마지막 30대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3년 전 함께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이번에도 대만 맥주를 많이 마시고 오자고 결심했지만, 체력이 3년 전만 못했던 우리는 '적당히' 마시고 왔다. 라오스를 가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본 뒤 라오스는 살도 빼고 여러 날을 쉴 수 있을 때 다녀오자고 결정했다. 그렇다면 대만이 있었다. 살도 빼지 않아도 되고, 비행시간도 이동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고, 물가도 저렴하고 맛있는 것이 많은 곳. 대만으로 갔다. 

     

        생각만큼 맥주를 많이 마시진 못했지만, 먹는 것은 끊임없이 먹었다. 먹기 위해 많이 걸어다녔다. 맛집을 찾아 걸었고, 배를 빨리 꺼뜨리고 다음 음식을 집어넣기 위해 걸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눈앞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면 일단 이것으로 허기만 채우자, 했던 길거리 음식들이 의외로 무척 맛있었다. 사 먹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조식까지 먹어야 하다니, 라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 내려갔던 호텔 식당의 음식들도 훌륭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조식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저녁을 먹고 와서, 야식으로 맥주를 마셨다. 방에서 한 캔을 마시고, 바람 쐬며 마시자며 호텔 바로 아래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몇 캔을 더 사 파라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며 마셨다. 타이완 맥주공장에도 갔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거기 저렴하고 근사하고 맛있는 바가 있다고 해서. 그런데 결국 바는 얼마 전에 문을 닫았고, 대신 편의점 비슷한 공간에서 생맥주를 팔고 있었다. 그곳에서 맥주를 마시다 한국말 잘하는 일본인 토모상도 만났다. 다음 날, 셋이 함께 샤오롱바오도 먹었다.

     

        사람들로 미어터질 것 같은 스린야시장에서 대왕치킨까스와 돼지고기포를 사와 호텔방에서 먹었고, 용캉지에에서 줄을 서서 먹은 고기국수는 조금 짜긴 했지만 맛있었다. 고기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첫날 먹었던 망고주스는 우리가 생각했던 생망고주스가 아니었지만, 날이 너무 무더웠던 지라 꿀맛 같았다. 가이드북이며 대만을 먼저 다녀온 E가 극찬했던 쩐주나이차는 달달하니 맛있었지만 금방 무언가를 먹고 온 우리에겐 너무 배가 불러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토모상은 대만에 오기 전에 오키나와 여행을 했는데, 길을 걷다 오리온 맥주 포스터를 보자 맛있는 맥주라고 말했다. 오키나와 맥주인데, 무척 맛있었다고. 토모상과 헤어지고 대왕오징어를 먹으러 딴수이를 거쳐 빠리에 갔는데, 거기 패밀리 마트에 오리온 맥주가 떡 하니 있었다. 짭짤하고 부드러운 오징어와 맥주를 딴수이 강을 마주한 채 먹고 마셨다. 한국에서 미리 선곡해온 음악도 함께 들었다. 스펀역의 닭다리볶음밥. 닭다리 안에 볶음밥을 넣고 양념해서 구워 먹는 건데, 정말 맛있었다. 하나 더 먹고 싶을 정도였는데, 우리에겐 먹어야 할 것들이 많아서 하나만 먹었다. 지우펀에서는 취두부 냄새를 뚫고 찾은 오래되고 저렴한 국수집에서 완자국과 당면 같은 국수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고 저렴했다. 유명한 딘타이펑에도 갔다.

     

        동생 부탁으로 사온 때깔 좋았던 커피원두는 탄 맛 투성이고, 무슨 맛일지 궁금했던 곱창국수는 결국 먹지 못했고, 훠궈도 너무 배가 불러서 깊은 국물 맛을 만끽하지 못했지만. 대만은, 맛있었다. 배불리 먹은 타이페이. 생각하니 하나하나 고 맛들이 다 생각나네. 아, 또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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