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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스본행 야간열차
    극장에가다 2014. 6. 7. 14:47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이 영화를 특별히 만든 건 리스본의 풍경과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 같다. 주인공 그레고리언스는 어느 날,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빨간 코트의 여자를 구하고 그녀가 남기고 간 한 권의 책과 마주한다. 그 책 속에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코트와 책과 티켓을 전해주기 위해 역으로 향한다. 간신히 열차 시간에 도착한 남자. 남자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얼떨결에 열차를 타게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남자가 여자가 남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생긴 커다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 인생이 너무나 대단해서 내 인생이 별 것 아니게 느껴져요. 남자는 그 책 한 권으로 인해 변화한다. 그 책을 쓴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지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 궁금해지고, 그리하여 찾아 나선다. 단 한 권의 책에 매료되어 시작된 리스본 여행이다. 영화를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정말 올바른 독서라고 생각했다.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것.

     

       내가 기억하는 제레미 아이언스는 <다이하드>에 등장했던 악당의 모습이었는데, 이 영화에서의 모습은 물론 나이가 들긴 했지만, 그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몸짓과 걸음걸이, 표정에는 고독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극 중 남자는 부인과 이혼한 뒤 철저히 세상과 단절된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리스본에서 변화한다. 두터운 안경을 벗고, 리스본 거리를 거닐고, 매일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 그가 강을 건너는 배 안에서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책을 꺼내 읽는 모습이 참 좋았다. 바람이 불었고, 그는 고독해보였고, 충만해보였다. 책을 읽는 남자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다니. 그리고 포르투갈에 가고 싶어졌다. 리스본의 거리를 걷고 싶어졌다. 영화 속 리스본의 분위기는 주인공을 닮아 있었다. 이따금 고독해보였고, 이따금 충만해보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리스본에 대한 여행 다큐를 찾아 봤다.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포르투갈어에는 '사우다데'라는 말이 있다고. 그건 멀리 헤어진 사람에 대한 사랑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슬픔을 뜻하는 말이라고. 아, 정말 근사한 말이다. 포르투갈 지도를 사서 거울 옆에 붙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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