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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춘의 문장들+
    서재를쌓다 2014. 6. 4. 17:31

     

     

        그렇게 해서 추풍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추풍령을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충청도가 시작되는데, 내 힘으로, 내 두 다리로 그렇게 먼 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이었다. 나는 완전히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추풍령휴게소에서 우리는 김밥 같은 걸 사먹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위령탑의 글귀를 읽고, 원숭이와 공작을 구경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길은 직지사 삼거리까지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상쾌한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니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이제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서쪽으로는 양천, 남쪽으로는 남면, 동쪽으로는 아천, 북쪽으로는 직지사까지 나는 신나게 쏘다녔다. 그중에서도 직지사는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김천에 들르면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갈 정도로 자주 찾아간 곳이었다.

    p. 63-64

     

     

        이 부분을 읽고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귀를 귀울이면>과 <허니 클로버>의 주인공들. 두 영화에서도 저 구절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한 주인공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기 위해, 한 주인공은 좋아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 도착한다. 두 사람 다 그 끝에서 웃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는 저런 성장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찰나의 순간을 거치며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요새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어떤 순간을 경험한 뒤였는데, 이 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조금은 달라질 거란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행복감, 좌절감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감과 좌절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확신이었다. 영화 <외출>을 보면서 내가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는 손예진과 배용준이 아니라 임상효와 류승수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두 사람이 깨어나면 어떻게 될까 등등. 영화에서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이 더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쓰여지지 않은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들, 그 때의 날씨, 그 때의 심정에 대해.

     

     

    - 모든 연령이 다 힘든데, 인생에서 골짜기처럼 꺼지는 나이대가 있죠. 그게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아이는 성인이 되고, 부모는 돌아가시죠. 그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오히려 모두가 나에게 기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계획된 일정 같은 거예요. 그 중압감이 우리로 하여금 "아,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거죠.

    p.49

     

    -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김천에 내려갔다가 올라왔더니 택배가 왔다고 경비실에서 연락을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주문했던 책들이더군요. 정신이 없으니까 까맣게 잊어버렸던 거죠. 택배 박스를 풀었더니 리디아 플렘이 쓴 <수런거리는 유산들>이라는 책이 나오더라구요. 별생각 없이 펼쳤는데, 첫 문장이 다음과 같았어요.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가 된다."

    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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