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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서재를쌓다 2014. 3. 12. 16:45

     

     

     

        <작가란 무엇인가> 하루키 편을 읽다가 읽다 만 하루키 소설이 생각났다.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하루키의 인터뷰는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다음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가 무척 궁금했지만 책의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그래야 즐거움이 증폭되니까. 그런데 뭐랄까. 에코와 파묵 다음에 이어진 하루키의 인터뷰는 기대했던 것만큼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존 레이의 글에서처럼, 하루키는 역시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존 레이는 '가급적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고 오래 뜸을 들이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루키의 담백한 인터뷰를 읽고나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생각이 났다.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를 끝내야지 생각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잘 읽혔다. 책장도 잘 넘어가고 재밌었다. 다자키 쓰쿠루라는 사람이 있다. 나고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 그에게는 고교 시절 완벽한 멤버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가 잘 났고 모두가 똑똑한 식의 '완벽함'이 아니라 각자의 결점들과 장점들이 하나의 그룹 안에서 잘 어우러지는 '완벽함'이었다. 그런데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던 도중 네 멤버들이 일제히 다자키 쓰쿠루를 거부한다. 영문도 모르고 그룹에서 쫓겨난 것. 누군가의 표현처럼 다자키 쓰쿠루는 조용하고 냉정하고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 그는 죽을만큼 괴롭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만큼 그에게 그 그룹은 특별했다. 오래 앓고난 뒤,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내면도 겉모습도, 고독한 모습의 어른이 된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서른 여섯살이 된 그가 두 살 연상의 사라라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녀의 충고에 따라 네 친구를 찾아 그 때 그 이유를 묻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 사라는 그때 그 이유로 다자키 쓰쿠루의 마음이 닫혔고, 그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직접 그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자키 쓰쿠루는 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를 처음 만났고, 그러기 위해 친구들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사실 이유라는 건 김이 빠졌다. 친구들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당연하게도, 그들은 조금만 조사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그곳에서 '대부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 또한 맥이 빠졌다. 이런 저런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읽으면서 즐거웠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하루키는 우리에게, 나는 내게, 이 한 명의 독자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넌 정말 멋지고 색채가 넘치는 다자키 쓰쿠루야. 그리고 근사한 역을 만드는 사람이고, 지금은 건강한 서른여섯살 시민으로 선거권이 있고 세금도 내고 나를 만나러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까지 올 수 있어. 너에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 너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두려움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선 안 돼." (p.387)

     

        그나저나 가장 궁금증을 많이 남긴 인물 둘. 하루키가 가장 최소한의 정보만을 남기고 소설을 끝낸 두 사람. 사라와 하이다. 사라는 다자키 쓰쿠루의 과거와 아무 관련이 없을까? 그리고 하이다는 어떻게 된걸까? 그러고 보니 둘은 정말 완벽한 인물이었네. 완벽한 일처리와 완벽한 사라짐.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쓰쿠루가 죽음을 극복한 후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과 하이다가 사라진 후 쓰쿠루의 체념. 그리고 사소한 일상을 묘사한 이 부분도.

     

    ... 쓰쿠루가 얼굴을 보이자마자 책을 덮은 후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부엌에서 커피와 오믈렛과 토스트를 만들었다. 신선한 커피향이 풍겼다. 밤과 낮을 가르는 향기이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낮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하이다는 평소처럼 짙게 구운 토스트에 꿀을 살짝 발라 먹었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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