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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만적인 앨리스씨
    서재를쌓다 2013. 11. 30. 01:58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많은 아버지가 있고, 많은 어머니가 있다. 많은 아들이 있고, 많은 형제가 있다. 이 소설은 그 중 한 명의 아버지, 한 명의 어머니, 두 명의 아들, 한 형제의 이야기. '씨발'년인 어머니와 폭력을 방관하는 아버지를 부모로 둔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의 이야기다.

     

       처음엔 뭔가 싶었다. 잘 읽히지 않고 자주 책장이 덮혔다.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이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황정은이 말하는 당신,이 누굴까 생각했다. 짧은 소설인데, 속도가 더뎠다. 그러다 마지막 장이 가까워지고, 마침내 책을 덮게 되었을 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황정은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홍대에서 했던 작가와의 만남이었는데, 그 때 황정은이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대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잘 쓰고 싶어 오래 고심하고 쓴다고. 이번 작품에도 대화가 인상적이다. 부모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된 앨리시어와 동생의 대화인데, 이 대화가 거듭될수록 슬퍼진다. 특히 동생이 너무 가엾어진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슬픔에 가까운 것이다.

     

        소설은 고요하게 시작했다 고요하게 끝난다. 뭔가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한 건 주인공의 '행동'이 변화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한차례의 냄새나는 하수가 동네를 휩쓸고 그렇게 소설은 끝난다. 앨리시어가 뭔가 행동해야 했어야 했는데. 책을 덮고 바로 든 생각이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황정은의 소설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 게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아쉽기도 하고 그렇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 차갑게 식은 몸으로 바닥에 눕는다. 꿈도 없이 짤막한 잠을 자고 새벽녘 정적 속에서 눈을 뜬다. 높다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곧 날이 밝을 것이다. 앨리시어는 부은 손가락들을 가슴에 올리고 눈을 깜박인다.

    눈을 뜨기 직전에 무슨 소리인가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퍽, 하고 눈꺼풀이 벌어지는 소리. 뼛속의 성장판이 끓는 소리. 그 소리와도 같은 소리.

    목이 마르다.

    p.148-149

     

        인터뷰를 읽었는데, 똑같은 문장으로 끝나는 세 편의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두 편을 완성했는데, 그 중 한 편이 <야만적인 앨리스씨>라고. 쓰다보니 두번째 소설을 같은 문장으로 끝내지 못했다고 한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마지막 문장은 이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올 것이고, 그대와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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