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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잉 마이 홈
    티비를보다 2013. 11. 24. 15:41

     

     

     

       어젯밤, 드디어 마쳤다. 고잉 마이 홈. 처음 방영을 시작했을 때 시도했었는데 매번 2시간 가까이 되는 1화를 넘기지를 못했다. 가을. 뭔가 마음에 진하게 남을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가볍지 않고 여운이 남는 그런 이야기. 우리 집에 여덟 개의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오르면 가슴 정도까지 오는 복층 공간이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올라갈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씩 쌀쌀해지자 밤이 되면 올라갔다. 따뜻한 이불을 깔아놓고 그리고 덮고서는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1화부터 천천히 봤다. 늘 한 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어떤 날은 반쯤 보다 잠들었고, 어떤 날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켜자마자 잠들었다. 같은 회를 여러 날에 걸쳐 봤다. 그렇게 조금씩 보니, 그 시간들이 기다려졌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집에 가서 얼른 씻고 올라가서 드라마를 보며 잠들자 생각했다. 초겨울이 왔다, 드디어 마쳤다. 이야기가 끝났다.

     

       어제는 전날의 숙취로 낮에 세시 넘어서까지 계속 잠을 잤다. 그러고 나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에 혼자 말똥말똥했다. 비장한 각오로 노트북을 켰다. 마지막 회다. 이 드라마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이야기가 시작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동안 서먹하고 어색하고 짐을 떠밀기만 했던 가족들이 서로의 기억들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고, 걱정하고, 이해하게 되어가는 이야기, 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은 어느 밤, 아버지의 죽은 얼굴을 마주하고 혼자 흐느끼며 운다. 서럽게 운다. 엉엉 소리내며 운다. 자기 곁으로 오는 아내에게 말한다. 더 많이 얘기했으면 좋았을 걸. 아내가 손수건을 건네며 미소 지으며 말한다. 더 할 얘기 없다고 했었는데 말이야. 남자가 말한다. 후회인가. 아내가 말한다.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말이잖아. 남자가 말한다. 그럼 후회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아내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렇네. 나쁘지 않을 지도.

     

       다다이마.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 이 말은 집에 돌아왔을 때의 인사말. 장례식에 다녀온 미야자키 아오이가 아무도 없는 집에 대고 '다다이마'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장례식을 함께 다녀온 아버지가 가만히 딸의 얼굴을 들여다 보다 지금 한 말을 다시 해보라고 한다. 다다이마, 이 말 다시 해 봐. 딸이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한테 한 말 아니야. 엄마한테 한 거야. 엄마는 죽었다. 아빠가 말한다. 그래도 좋아. 다녀왔다는 말 좋네. 그리고 함께 웃는다. 다다이마. 다녀왔습니다.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정원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 나무 의자.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친구의 손자가 만들어온 녹기 전의 눈사람.

       쿠나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보라색 꽃으로 만든 한 다발의 꽃.

       나무와 단풍과 집과 산의 풍경들이 지나가고 드라마가 끝난다. 끝났다. 

     

       영화 <라스트 나잇>에서도 그 장면이 좋았다. 다툰 두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 화해를 하며 남편이 아내에게 만들어 주던 오믈렛. 계란을 풀고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만들어 접시에 담아 내밀던 그 새벽의 온도. 이 드라마에서도 함께 먹는 음식의 모습이 자주, 그리고 정성스럽게 비춰진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다. 베란다의 문을 고치다 베란다에 갇혀 버린 남편.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다. 잠옷 차림의 남편은 밖에서 베란다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똑똑똑. 안에서 딸과 함께 잠을 자던 아내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어떻게 된거야? 그리고 파와 브로콜리를 볶고 우유를 넣은 따뜻한 스프를 만들어 준다. 두 사람은 그 음식을 만드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눈다. 당신 전봇대 역할을 했단 말이야? 사람이 아니잖아, 하면서. 아내가 남편에게 스프 그릇을 내밀고, 남편이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참고 참아 마지막 회까지 보길 잘했다. 처음 기대했던 것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짙은 드라마였다. 다다이마, 라고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가족에 대해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생각했다. 그리고 1화를 다시 틀어놓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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