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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내 인생의 전부예요 - 우연한 걸작
    서재를쌓다 2013. 1. 15. 21:32

     

     

       

        벌써 지난해 겨울의 일. 친구가 읽고 있던 책이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가 좋은 책이라며 읽어보라고 선물해준 책이다. 총 열 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 좋은 챕터도 있었고, 그냥 눈으로만 읽은 챕터도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부분은 소설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구절들은 정말 좋아서 잠시 읽던 페이지를 덮어두기도 했다. 특히 챕터의 마지막 문장들이 그러면 쉽게 다음 챕터로 넘어가질 못했다. 하루를 쉬었다 다시 읽었다.

     

        피에르 보나르의 경우가 그랬다. 이 책에서 제일 처음에 소개되는 화가이다. 보나르는 평생 한 여자에게 중독되었다. 한 여자만 사랑한 건 아니다. 다른 여자도 있었다. 보나르는 한 여자에게 평생 중독되었다. 그를 중독시킨 여자 마티에르는 몸이 약한 사람이었다. 병약한 마티에르 때문에 보나르도 점점 은둔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을 멀리하고, 자신들만의 공간에만 머물렀다.

     

        "보나르는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사랑했다. 그가 가족도 연고도 없고 과거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끌린 걸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산층 출신이고 그 가치를 잊지 않았던 보나르는 마르트와의 관계가 도리에 어긋난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몇 십 년 동안 혼외 관계로 지냈다. 결국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렸을 때 참석한 사람은 아파트 관리인과 그녀의 남편, 루이자 포일라르와 조제프 탕송 뿐이었다. 보나르의 가족들은 오랜 세월 후 그가 죽고 나서야 둘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p.23

     

        보나르는 그리고 또 그렸다. 메모하고 또 메모했다. 보나르는 늘 주머니에 조그마한 수첩을 넣고 다녔는데, 날씨나 쇼핑 목록, 전화번호 같은 것들을 스케치한 페이지에 함께 적어두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는 늘 마티에르가 있었다. 그림의 한 가운데 있기도 하고, 구석에 있기도 하고, 작게든 크게든 항상 마티에르가 그림 속에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마르트는 1942년 1월 26일 죽었다. 보나르는 그날 수첩에 "맑음(beau)"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밑에 약간 흔들린 필체로 작은 십자가를 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첩에 날씨를 기록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마르트의 침실 문을 잠그고 다시는 들어가지 않았다. 마르트의 죽음은 친한 친구들에게만 알렸다.

    - p.43-44

     

     

        '죽음을 물리치고 인생을 구원한 걸작' 챕터도 좋다. 여기에는 세 명의 예술가가 소개되는데, 읽다가 좋아서 자주 책을 덮었다. 제이 드페오라는 화가가 있다. 그녀는 대형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벗겨내고, 또 칠하고, 벗겨내고.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다.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거의 브랜디와 담배로 때우며 그림만 그렸다. 그림의 제목은 '장미'. 몇 년에 걸쳐 그리다보니 화풍도 계속 변했다. 드페오는 상업적인 면과 경력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미술관 창고에 옮겨진 뒤에도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을 계속 고쳤다. 점점 두꺼워지는 물감의 벽. 그림을 시작한 지 11년 뒤에 비로소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되었는데, 미술계가 변한 뒤였다. 그리고 11년간 쌓인 두꺼운 물감 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미술관들은 구입을 꺼렸다. 드페오는 암으로 죽었다. 책에서 좋았던 부분은 몇년동안 드페오의 방 안에 있던 '장미'가 세상에 공개되던 순간. 전시를 하기 위해 그림을 꺼내는데 캔버스가 너무 커서 창틀이랑 벽을 들어내고 인부 8명이 매달려 지게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가 이 이사를 담은 단편 영화를 만들었단다. "길 에반스의 슬픈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쓴 이 영화는 사람들이 드페오의 '장미'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p.156) 

       

        드페오는 언젠가 이런 꿈을 꾸다 깼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미래에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는데 미술관에서 방에서 방으로 헤매던 중 갑자기 '장미'를 발견했다고 한다. 작품은 복원되어 있었고 어떤 사람이 그걸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있잖아요." 그녀가 말을 걸었다. "그거 내가 한 거예요."

    - p. 177

     

        다행 '장미'는 기금이 조성되어서 복원되고 전시되었다. 이 책에 있는 에바 헤세 이야기도 좋고, 샬로트 살로몬 이야기도 좋고, 프랭크 헐리 이야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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