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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인 오스틴 북 클럽
    극장에가다 2012. 9. 19. 11:11

     

        월요일부터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꼬치에 맥주를 마신 뒤, 히레 정종에 시샤모 구이를 먹어주었다. 어제도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족발에 맥주를 마시고 광화문으로 왔다. 샐러드에 생맥주를 마셔주고, 꼬치집에 들러 병맥주도 마셔주었다. 꼬치집 앞에서, 바람이 불었다. 이제 정말 누가 뭐래도 가을. 버스를 타고 들어오다 조는 바람에 종점 근처까지 갔다. 덕분에 조금 걸었다. 요즘 나의 플레이 리스트. 김목인의 그가 들판에 나간 건 - 토마스 쿡의 꿈 - 루시드 폴의 그 밤, 으로 이어지는 음악을 들으며 이 계절을 좀더 적극적으로 타주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 뭐 까짓것. 좀 더 가을을 탄다고 죽기야 하겠어.

     

        술을 마시지 않은 일요일, 이 영화를 봤다. 사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숙성이 필요한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지난 일요일, 동생들이 모두 나간 뒤 청소기를 돌리고 방을 닦고, 이불 하나를 덮고 이 영화를 봤다. 실비아의 남편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실비아는 이 상황이 믿겨지지 않고, 중년에 찾아온 실연에 견딜 수가 없다. 실비아가 그런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이불 뒤집어 쓰고 책이나 읽었음 좋겠어. 그런 그녀를 위해 절친 조셀린이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을 만든다. 실비아의 딸 엘레그라(그녀는 열정적인 레즈비언).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할머니 베네뎃(그녀는 결혼을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했다). 제자를 사랑하게 된 고등학교 교사 푸르디(그녀는 유부녀다). 우연히 알게 된 매력적인 연하의 남자 그릭(그는 SF소설 매니아. 제인 오스틴 따위 읽어본 적이 없다. 그가 제인 오스틴을 읽기로 결심한 건 그녀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섯 명이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여섯 편을 읽는다.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각자의 집에서, 와인과 간단한 음식과 함께.

     

        여섯 달이 지나고, 여섯 편의 소설을 읽어 가는 동안 여섯 사람은 각자 조금씩 성장한다. 여섯 달 전보다 좀더 나은 사람이 된다. 실비아는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고 아름다워진다. 엘레그라에게도 실연의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더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할머니 베네뎃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며, 푸르디의 남편도 제인 오스틴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릭과 조셀린.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의 주인공을 쏙 빼닮은 조셀린은, 엠마처럼, 자신이 이어주려고 했던 사람과 연인이 된다. 이 부분이 아주 근사하다. 조셀린은 그릭을 실비아와 이어주려고 하는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비아에게 잘 대해주는 그릭을 자신이 질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조셀린은 그릭이 권해줬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읽지 않고있던 소설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릭은 그녀에게 SF소설 두 권을 선물했는데, 그 날 그녀는 두 권 모두를 읽어 버린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그녀는 차를 타고 그릭의 집 앞으로 간다. 그 새벽에! 차마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들뜬 마음을 다독거리며 차 안에서 잠이 든다. 아침 출근길에 그릭이 조셀린을 발견한다. 이 영화는 이런 이야기. 좋다. 결국 모든 사랑은 이루어지고,  책을 읽는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침대에 누워서, 벤치에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어제 이 책을 소개받았는데, 아주 근사한 여행기인 것 같다. 이 책의 소개글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송라인』의 표지에는 해진 수첩이 놓여 있다. 이 수첩은 바로, 채트윈이 숭배에 가까운 말로 애정을 표했던 ‘몰스킨’이다. 이 책만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오늘의 일이 내일의 계획을 정하듯, 하나의 탐구로부터 다음의 탐구를 계획해나가는 ‘철학적 여정’이라는 점인데, 이 여정에서 채트윈은 한시도 저러한 수첩을 놓지 않았다.

     

        토요일, 대학로에서 나도 저 색깔의 몰스킨을 샀다. 두 권을 사서 친구와 하나씩 나눠 가졌다. 술에 취한 어젯밤에도 그 노트에 일기를 쓰고 잤다. 내 노트도 채트윈의 것처럼 너덜너덜해지면, 나도 뭔가가 되어 있겠지. 고맙게도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오늘 커피도 마시고, 미술관에도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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