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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서재를쌓다 2012. 8. 19. 16:45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박정석 지음/시공사

     

       그녀와 함께 한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 발트3국, 핀란드 여행. 화내지 않고 핀란드까지.

     

     

       핀란드는 지구의 북쪽 끝에 있다. 춥고 매우 조용하다. 여태 추우면서 조용하지 않은 곳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나.

       그 나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은 소소한 것들, 설명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것들, 직접 가서 보지 않고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몇 가지다. 글이나 사진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의 눈과 귀, 피부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들.

       바싹 말라 보기보다 아주 쉽게 불이 붙고 놀랄 만큼 화력이 세던 자작나무 장작.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푸른 빛은 물론 잔잔한 정도 또한 하늘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하던 호수와 물풀, 들꽃, 덤불.

       하늘을 향해 똑바로 뻗은 채 가느다란 가지에 앙증맞은 초록 잎사귀를 가득 달고 있던 하얀 숲.

       평화 속에 어쩐지 우울함이 느껴지는 도시의 인적 드문 거리.

       언제 들어가도 붐비는 일이 절대 없던 슈퍼마켓.

       한밤중에도 파르스름하게 빛나던 청색 하늘.

       아무리 어려운 질문이라고 해도 술술 대답할 준비를 마친 듯 환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던 젊은이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북쪽으로 날아들 메일 한 통, 조금 낯선 형상과 배열의 알파벳으로 발신인이 찍혀 있을 그 희고 바삭한 편지봉투를 기다리는 중이다.

     

       첫눈 소식처럼 반갑지는 않을지라도.

    p.363-364

     

        그렇게 여행이 끝났다.

        헬싱키에서의 일정이 이틀 더 남아 있지만 실질적인 여행을 마무리한 것은 사본린나에서였다. 여행이 끝난 장소뿐 아니라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오페라를 본 다음날 아침, 숙소의 정원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 도중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때 나의 여행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정말 그랬다. over. the end. finis. finale. fin. 쫑.

       아름다운 아침이다. 정원이 꽤 넓었다. 테이블에 앉아 건너편에 펼쳐진 호수와 성을 바라봤다. 핀란드의 풍경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림을 보득 정적인 느낌이 풍기는 고요한 경치다. 어젯밤 오페라 공연의 화려함과 시끌벅적함, 성 안으로 모여든 3000명의 인파 속에 끼어 2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져 있던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p.356

     

       "좋았어요. 좋았어."

       늘 하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도둑을 맞든, 동행과 싸웠든, 기대보다 별로였든, 돌아와서 생각하니 좋지 않았던 여행은 없었다. 세상은 넓고, 아름답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가치가 충분한 곳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누구나, 나도, 여행을 좋아한다.

    p.369

     

     

       그렇게 그녀의 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나는, 자꾸만 덜컹덜컹 마음이 서늘해진다. 가을이 오긴 올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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