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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셋, 여름비행 - 비행운
    서재를쌓다 2012. 8. 7. 21:41

    비행운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나는 이 책을 7월 6일에 주문해 7월 21일에 받았다. 첫장은 7월 23일에 넘겼고, 마지막 장은 8월 6일에 넘겼다. 언젠가 김애란을 만난 적이 있다. 작가와의 만남 자리였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녀는 청바지에 까만 구두를 신었다. 조곤조곤 조금은 수줍게 이야기를 하는데, 말을 잘했다. 어떤 말들은 수첩에 적어놓고 싶을 정도로 의미있었고, 어떤 말들은 웃겼다. 정말 웃겼다. 그녀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지난 번 장편도 빨리 주문한 덕분에 사인본으로 받았다. 그때는 사인을 한 필기구도 별로였고, 글씨도 별로였는데, 이번엔 제법 근사하다. 2012년 7월이라는 날짜 밑에 '여름비행'이라고 적어줬다. 그녀와 나는 동갑. 얼마 전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다. 그녀는 어떤 아내일까. 어떤 엄마가 될까.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읽다보니 반은 문예지나 다른 묶음 소설집에서 읽은 적이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때는 모두 심드렁했던 작품들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모아놓고 읽으니 다르다. 한 편, 한 편에 마음이 움직인다. 이렇게 근사한 작품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심드렁했었나, 라고 생각하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갔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벌레들. 물속 골리앗.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하루의 축. 큐티클. 호텔 니약 따. 서른. 그리고 작가의 말. 호텔 니약 따는 일요일 밤에 요를 깔고 누워 읽고 있었다. 마음은 서늘해지는데, 자꾸만 잠이 밀려와 읽던 페이지에 손바닥을 끼고 잠들어 버린 무더운 여름밤. 월요일 출근길에 호텔 니약 따를 마저 읽고, 서른을 읽었다. 몇 페이지 밖에 남지 않았는데, 덮어버리질 못하겠어서 셔틀 기다리는 곳에서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니 셔틀이 왔다. 선풍기 미풍같은 에어컨 바람이 불어오고, 셔틀은 출발하고, 쨍-한 하늘과 몽실몽실한 구름을 올려다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는 게 뭐 이래. 출근 같은 거는 하지 말고, 그대로 집에 돌아가 커튼을 내리고 선풍기를 틀어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울고 싶어졌다. 그렇게 조금 울다보면 잠이 솔솔 올 거 같았다. 그렇게 하루종일 자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니, 이 사람들. 어쩜 좋으니, 이 바보들. 그러는 중에 내가 있다. 어쩌면 좋은지, 어떻게 하면 좋은지 모르겠는 사람들 중에 내가 있다. 김애란이 꼭꼭 그리고 꾹꾹 눌러 쓴 낱말과 낱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내가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이따금 숨고 싶어졌다. 이따금 울고 싶어졌다. 어쩌지, 나. 어쩌면 좋지, 나.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선배가 미영에게 했던 말. 옷이랑 너무 안 어울리는 가방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선배가 미영에게 그런다. "난 저 가방 때문에 이 사진이 좋은데. 이 여자의 '생활'이 보여서." 나도 김애란의 '생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녀가 이 소설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생활'들. 공사가 진행 중인 재개발 지역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모습,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기서 멉니까?' 라는 뜻의 중국어 문장을 소리내어 따라해 보는 모습, 인천 공항에 앉아 오고가는 사람들을 몇 시간이고 올려다보는 모습, 손톱 관리를 받으며 어색해지는 자신의 손톱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모습, 친구와 동남 아시아 어딘가를 여행하는 모습, 책상 위에 의자를 올려야만 발을 뻗을 수 있는 고시원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 내가 상상하는 이 모든 것이 그녀겠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나이기도 하겠다.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고맙다. 사십 대의 그녀와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까. 부디 이번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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