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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리만자로의 눈 - 심장이 둘인 큰 강
    서재를쌓다 2012. 7. 13. 23:11

     

     

       금요일. 마트에 들렀다 집에 바로 들어왔다. 훈제연어와 맥주를 사들고 들어왔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니 엽서도 와 있었다. 이번주에 못 본 <로맨스가 필요해>를 봤다. 훈제 연어를 3분동안 흐르는 물에 두고 해동시켰다가 맥주와 함께 먹었다. 조금 느끼해지기 시작할 때쯤 뜨겁게 달군 팬에 연어를 구웠다. 자악자악 연어 구워지는 소리가 들리고, 쏴아쏴아 쏟아지는 빗소리도 들렸다. 나는 오늘 헤밍웨이만 생각하고 있다.

     

       지난 주 목요일부터 수업을 듣고 있다. 어떤 소설을 읽고,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수업이다. 처음에는 그냥 여름이 허무하게 가 버리는 게 아까워서 큰맘 먹고 결제했는데, 두 번 수업을 듣다 보니 이건 정말 좋은 수업이다. 올 여름을 나름 잘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실까지 가는 동안 옛날 빙수를 파는 카페를 지나게 되는데, 어제는 거기서 라떼를 사마셨다. 수업 듣는 내내 비가 오거나, 비가 올 거 같거나, 비가 왔다. 처음 수업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었고, 두번째 수업은 헤밍웨이였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읽지 못했고, 헤밍웨이 책은 읽었다. 짧막하고 조금은 긴 소설들이 뒤섞인 소설집이었는데, 좋았다. 선생님은 수업내내 좋은 작가지만, 정말 문제가 많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하겠다. 문제가 많다는 것에.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작가라는 것에.

     

       수업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헤밍웨이 신드롬에 대한 이야기. 당시 헤밍웨이는 정말 붐이었단다. 지금의 소녀시대 인기만큼이나. 헤밍웨이도 그걸 즐겼다고 한다. 그는 마초였고, 영웅주의자였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만 썼단다. 그런데 나중에 자신이 신화화되고 영웅화되었을 때, 그리고 그걸 자신이 즐기고 있었을 때는, 자신이 쓴대로 살려고 노력했단다. 그래서 그는 불행했단다. 그래서 그는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무수히 많은 짐승들을 사냥했던 총으로 자기자신을 쏠 수밖에 없었단다.

     

       또 다른 한가지는 두려움에 대한 묘사. 단문체로 유명한 그도, 어떤 묘사에 있어서는 결코 단문체가 아니었단다. 집요하게 그것을 묘사하고 묘사했단다. 선생님은 그걸 두려움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이런 문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엉망으로 터진 머리는 깨진 화분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살아야만 아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읽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읽고 오십시오. 읽으세요.

     

       그러니까 나는 이 수업을 위해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었다. 사실 이 수업의 목록 중에 헤밍웨이의 소설이 있어 이 수업을 신청한 것도 있다. 나는 헤밍웨이가 궁금했고, 더 읽고 싶었다. 이 수업은 1시간 정도는 작가의 생애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1시간 정도는 그 작품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2시간 내내 완전 집중했다. 수업시간에 내가 읽었던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 언급되었던 이야기도 나왔고, 저번주에 본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했던 인물들도 나왔다.

     

       <킬라만자로의 눈>은 나를 여러 곳으로 데려다줬다. 킬리만자로의 설산으로, 사자가 있고 물소가 있는 사파리로, 아무도 없는 깊은 숲속으로, 나는 결코 죽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게 되는 어느 아침 호수 한 가운데로, 송어가 솟구치는 강가로, 자신을 죽이러 올 킬러를 마냥 기다리는 침대 위로. 헤밍웨이는 그 순간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쓸쓸했으며, 대부분 외로웠다. 그렇지만 기분 나쁜 외로움은 아니었다.

     

        13편의 짧고, 조금은 긴 소설들이 실려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한번 더 읽었던 소설은 '심장이 둘인 큰 강 1부'였다. 이상하지. 이 소설 속의 주인공 닉은 여러번 반복해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해, 행복해, 라고. 응. 그런데 닉이 행복한 건 알겠는데, 왠지 모르게 나는 쓸쓸해진다. 행복한 동시에 쓸쓸해진다. 그러니까,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온전히 행복한 것도 아니다. 이상하지. 그런데 나는 그런 기분이 참 좋아서 이 소설을 두번이나 읽었다.

     

       그는 도끼로 그루터기에서 잘라낸 소나무 조각 몇 개로 불을 피웠다. 철망을 불 위에 올리고, 장화를 신은 발로 철망의 다리 네 개를 박아 넣었다. 닉은 불 위의 철망에 프라이팬을 얹었다. 배가 더 고팠다. 콩과 스파게티가 따뜻해졌다. 닉은 그것을 휘젓고 함께 섞었다. 음식이 보글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거품들이 힘겹게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좋은 냄새가 났다. 닉은 토마토케첩 병을 꺼내고 빵 네 조각을 썰었다. 이제 작은 거품이 보글거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닉은 불 옆에 앉아 프라이팬을 들어냈다. 내용물을 반쯤 주석접시에 부었다. 음식은 천천히 퍼지며 접시를 채워나갔다. 닉은 그것이 너무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 토마토케첩을 조금 부었다. 콩과 스파게티가 아직도 너무 뜨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불을 보았고, 이어 텐트를 보았다. 혀를 데어 이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튀긴 바나나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식는 것을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기 떄문이다. 그의 혀는 아주 민감했다. 배가 몹시 고팠다. 강 건너 늪에서, 거의 어두워진 곳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는 텐트를 한번 더 보았다. 됐어. 그는 숟가락을 깊이 찔러 넣었다.

      "아흐." 닉이 말했다. "죽이네, 아흐." 그가 행복하게 말했다.

    p.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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