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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봉氏의 가방
    서재를쌓다 2012. 6. 14. 21:05

     

     

     

     

     

     

    행성 관측 3

     

                                                       천서봉

     

    추억을 오후 두 시의 하늘 밑에 널어놓고 나면 간밤의 독설이 둑둑 물소리로 듣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내 머리 몇가닥 하얀 물이 들듯 그렇게 사람을 잊는다.

     

    흩어진 설탕을 손가락으로 다시 모으듯, 쓸쓸한 약속이 뒤섞인 오후에는 모서리 뭉툭해진 내 안구가 조금 흔들렸고 흐린 밥물 같은 색깔로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봄꽃들 사이 사람을 잊는다.

     

    동경 126도 59분, 북위 37도 34분, 돌아와 홀로 찌개를 데우는 시간, 듬성듬성 가위로 잘라놓은 김치들, 미처 끊어지지 않은 머리라든가 목대, 몸부림 따위를 밥 위에 얹어 꿀꺽 삼킬 수 있다면 그렇게 너무 커다란 저녁이 오고 나는 사람을 잊는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말하지 못하고 하필이면 오늘 저렇게 빛나는 별이 사람을 잊는다. 누군가 저 별을 바라보며 길을 잃지 않겠다 싶어 인력(引力)이라 쓰고 인연이라 읽는다.

     

    그래도 잊자, 그래도 잊자, 창 닫고 돌아서면 현관에 당신이 버리고 간 구두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돌아가는 지구(地球)가 있다.

     

     

     

    니가 가고 나서 니가 선물해 준 시집을 읽고 있다.

    '봄밤'이 많아서 샀다던 시집.

    이제 여름밤. 곱씹으며 아껴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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