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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센던트, 봄
    극장에가다 2012. 3. 1. 14:14




       이 영화를 이틀 연속으로 봤다. 처음에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울었다. 두번째는 어떤 장면에서 울었다. 월요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OST를 들으면서 야근을 하는데, 그 생각이 났다. 처음에 모든 장면에서 울고, 두번째에 어떤 장면에서만 운 것. 어떤 슬픔을 견딘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슬픔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무뎌지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첫번째는 모든 것에 울고, 두번째는 어떤 것에 우는 것. 어떤 것들은 여전히 슬프고, 어떤 것들은 견딜 수 있어지는 것. 2월에 나는 <디센던트>라는 제목의 영화를 두 번 봤다.

       하와이에도 슬픔이 있다. 고통도 있고, 고독도 있다. 하와이에도 떠나는 자가 있고, 남겨지는 자가 있다. 이 영화는 남겨지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 남겨지는 세 사람이 이 세상을 꽤 잘 버텨나갈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엄마가 혼수상태인 상태로 병원에 있을 때 덮었던 노란색 이불을 아빠와 두 딸이 함께 덮어가는 장면. 세 사람은 휴양의 섬 하와이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또 다른 슬픔을 만들고, 또 다른 고통을 만들고, 또 다른 고독을 느끼며,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며 살아갈 거다.

        아침에 시장에 가서 딸기도 사고, 담백한 맛 베지밀도 사고, 잡채 해 먹으려고 당면과 버섯도 사고, 새 칫솔과 물티슈도 샀다. 꽃집에 새로 나온 화분들도 구경하고, 갓 나온 빵 냄새도 맡고, 열번 다 찍은 쿠폰으로 라떼도 사 먹었다. 삼월이 되니 공기가 달라졌다. 봄이 왔나 보다. 당연하게도 중랑구에 사는 내게도 슬픔이 있고, 고통이 있고, 고독이 있다. 요즘 나는 술을 마시고 지하철만 타면 외롭다. 누군가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외롭고, 새로 만들어진 동아리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도 외롭다. 책은 잘 읽히지 않고, 내 나이만 계속 곱씹게 된다. 하지만 나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어주면서. 요시다 슈이치의 새 책이 나왔고, 어제는 회식을 했다. 일산에서 합정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최근 연애를 시작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 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봄이 오고 있나니. 이소라의 다섯번째 봄은 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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