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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에이프릴 스노우
    극장에가다 2011. 4. 19. 23:52


       영화 한 편 보지 않으면 주말을 보낸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주말이면 꾸역꾸역 집 앞 극장에 가는데, 저번주에는 도저히 근처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 티비영화를 봤다. 구매하기 버튼을 누르고, 켜뒀던 형광등을 껐다. 창문은 활짝 열어뒀다. 방 안으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들어왔다. 한겨울 지나 구입한 봄 이불을 꺼내놓고 맥주 한 잔도 투명한 잔에 따랐다. 이윤기 감독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가 시작됐다. 

        영화를 본 다음 날, 거짓말처럼 비가 왔다. 영화는 그림 같은 이야기다. 배우들도 그렇고, 영화 속 집도 그렇고, 이 두 사람의 이야기도 그렇다. 여자는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배웅해주는 남자에게 이별을 고한다. 집을 나가겠다고. 돌아오면 맛있는 밥을 먹자는 말처럼 그렇게 툭. 집을 나가겠다고, 이제 그만하자고. 더 그림같은 건 남자다. 남자는 그러라고 한다. 여자가 아끼던 찻잔을 가져가기 좋게 포장해주고, 짐을 정리하는 그녀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그들의 마지막 저녁을 위해 근사한 레스토랑에 예약도 해둔다. '어쩌면' 이들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는 그 날,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여자는 짐을 싸고 (사실 영화 상에서는 그녀가 짐 싸는 모습은 '결코' 볼 수 없다) 남자는 여자를 보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니 여자가 남자를 떠나는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비가 내린 어제. 계속 커피 생각이 났다. 기계가 내린 커피 말고, 사람이 내려주는 커피. 마음이 담겨 있는 커피. 정성스레 커피콩을 갈고, 물을 끓이고, 시간을 들여 커피를 내려 아끼는 찻잔에 따라주는 커피. 정말 하루종일 생각났는데, 결국 마시질 못했다. 강원도에는 눈이 왔다고 한다. 세상에 지금 4월 중순인데. 에이프릴 스노우. 사월에 눈이 내리는 일. 영화 <외출> 생각이 날 수 밖에. 어디선가 끊어졌던 사랑이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기적 하나 없이, 사월에 눈이 내릴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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