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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쌓다

봄밤

by GoldSoul 2011. 4. 11.

    시를 읽는 봄밤. 오래간만에 시집을 샀다. 집에 가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 교보에 들렀는데, 오늘 보았던 어떤 시집이 생각났다. 지하철을 타려다 마음을 바꿔 버스를 탔다. 시집을 뒤적거리다 시 한편을 찬찬히 읽고, 졸았다. 어느새 집 앞. 목련꽃이 환하다. 봄밤같다. 이제 자야지. 푹 자야지. 내일부터는 다이어트다. 


상처를 이야기하는 누이들에게
                                            김승강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어제는
통닭튀김에 생맥주가 간절히 생각나 생맥줏집에 갔다
통닭튀김에 생맥주가 놓인 풍경은 주기적으로 머릿속에
서 떠오른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해라 나는 술을 마시
겠다 비가 내린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나는 반가워
또 술을 마신다 어제 한 맹서는 하루 만에 거둔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아내가 인심 좋
게 나가서 술 한잔하고 들어오지요 한다 아내는 병들고
폐경이다 아내와 관계를 가진 적이 언제였던가 술로도
달랠 수 없는 것이 있는 법 세월은 자꾸 흐르는데 아내는
내 마음을 벌써 읽었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 소식이다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면 여자 동창들
이 더 적극적이다 나에게는 상처가 없으니 그리움이 전
부 그리움 앞에 술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나는 간신히 중
년 주기적으로 통닭튀김에 생맥주의 풍경이 떠오른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나는 간신히 중년, 이라는 시구.
이 시집에 이런 제목의 시도 있다. '자판기 커피는 내가 빼올게'


기타 치는 노인처럼
김승강 지음/문예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