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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가 X에게 - 손으로 쓴 편지
    서재를쌓다 2011. 3. 17. 22:50
    A가 X에게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열화당


        2월. 우리는 광화문의 술집에 있었다. 좁은 나무 계단을 삐걱대며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이 있는 술집이었다. 다섯 개의 탁자가 놓여져 있고, 그 중 하나에 앉아 술을 마셨다. 따뜻한 정종을 한 잔 마시니 방바닥이 뜨끈해졌다. 한 잔만 마시고 가자고 한 것이 두 잔이 되었고, 세 잔이 되었다. 아마 다섯 잔 정도 마셨을 거다. 옆 테이블에 영풍문고 종이가방을 든 점잖은 아저씨 일행이 들어와 정종을 시켰다. 우리가 시킨 모듬 꼬치에 참새구이가 들어가 있나 그런 이야기도 했었다. 가족이야기도 했고, 옛날 사람들 이야기도 했다. 조금 울기도 했지만, 많이 웃었다. 밖은 추웠지만 방바닥은 뜨끈뜨끈했다. 내가 이 책을 꺼냈다. 세 잔 정도 마셨을 거다. 

       편지로만 씌어진 소설이야.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건 손 그림이 나오면서부턴데 여기 봐봐. 여자가 남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 손을 그려 보내. 처음 그림이 펜을 쥐고 있는 손이야. 손 그리는 법을 설명한 책을 보고 그린 그림이야. 이 소설을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는데, 그건 다 손 그림이 나오는 부분이야. 처음엔 편지 쓰고 있는 손. 여기 손에는 눈이 있어. 꼭 잡고 있는 두 손도 있어. 어디든 두고싶은 곳에 두래. 가위 잡고 있는 손, 칼 잡고 있는 손. 여기 이게 마지막 손이야.

       두 잔 정도를 더 마시고 술집에서 나와 집에 있을 동생과 남편을 위해 빈대떡을 사서 각각 포장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아빠가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는 아빠도 아니면서, 술도 얼큰하게 취했고 빈대떡도 샀다. 2월이었고, 3월인 지금도 춥지만, 2월에는 지금보다 더 추웠다. 오늘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멍하게 앉아 이 소설 생각을 했다. 그 손은 잘 있을까. 펜을 쥐고 있을까, 편지를 쓰고 있을까,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있을까, 칼을 쥐고 있을까. 봄은 언제 오는가. 그런 생각들. 

        2011년 2월의 나는 이런 문장들을 다섯 번 반복해서 읽었다. A가 X에게, 167페이지. 역시 손 이야기다. "단추와 콩은 공통점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힌트를 줄게요. 당신 손을 한번 보세요! 내가 보낸 손 그림들을 창문 바로 아래 붙여 놓았다고 했죠.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들이 제멋대로 흔들린다고요. 그 손들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거예요. 당신이 먼 곳을 보고 싶을 때 당신의 고개를 돌려 주고,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은 거라고요. 갓 태어난 아기들이 울음 대신 웃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상한 질문이죠. 우린 삶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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