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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홋카이도 보통 열차 - 고마워요, 지은씨
    서재를쌓다 2011. 2. 5. 23:57

    홋카이도 보통 열차
    오지은 글.사진/북노마드


       그녀에게는 '혜령'이라는 친구가 있다. 처음에 사인을 받을 때 내 이름을 말하니, 그녀는 자기 친구 중에 혜령이라고 있다고 친구이름과 비슷하니 반갑다고 약간 들뜬 상태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사인을 받을 때 내 이름을 말하니, 믿을 수 없게도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혜령이라는 친구가 있다고 전에 얘기했었죠. 그녀는 또 한번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아, 나는 참으로 감동받았다. '비록 당신의 미래 위에 그 어떤 사랑이 온대도 당신이 나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는 오지은님이 나를 알고 있다고. 이 지경이다. (나는 'Wind Blows'가 참 좋다. 이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고 있는데, 싸아-하고 바람이 불어오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보기와 다르게 술을 못 마시고, 보기와 다르게 다정하고 세심하고 꼼꼼한(미안요. 왠지 처음엔 그런 이미지아니였거든요. >.<) 그녀가 들려주는 카이도 여행이야기다.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간다. 재밌다. 그녀와, 그녀의 음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읽으면 조금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음악을 접해도 좋을 일. 이번 연휴 때 읽으려고 넣어갔는데, 처음에 꽤 재밌어서 연휴 끝나기 전에 다 읽어버릴까봐 아껴 읽었다. 전 부쳐야 하는 내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막내동생이 이 책에 손을 대는 바람에 하룻밤 빼앗기기도 했다. 서울 올 때 동생이랑 버스 따로 타고 올라왔는데, 동생이 이 책 계속 읽으려고 (한 권 더 사려고) 서점까지 들렀다는 사실. 안타깝게도 작은 읍내 서점이라 책은 구할 수 없었고, 나는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보조등까지 켜놓고 다 읽었다. 버스 안에서 해가 졌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니 차가 막히고 있었다. 그때부터 서울까지, 그녀의 음악을 들었다. 1집 노래들. 화, 부끄러워,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Wind Blows...

      그녀는 생각보다 세심한 여자였다. 꼼꼼하고 소심하기도 했다. 나쁜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내지 않고, 속에 들여놓고 곱씹고 아파한 뒤에 내어보냈다. 그렇게 2집까지 끝내고 나니, 마음이 아픈 일이 많았다 했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했다. 홋카이도 여행은 그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보통 열차를 타고, 보통의 속도로, 보통의 나를, 보통의 마음으로 돌아보는 일. 그녀가 한 카이도 여행이다. 빨간머리 앤 모자와 닮은 밀집모자를 쓰고, 맛집을 찾아가고, 기차역에서 소문난 에키벤을 사 먹고,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사온 과자며 케이크를 꺼내 먹으며 즐기는 보통 열차 여행. 처음부터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 목적으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녀는 이 여행의 모든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초록의 풍경, 역에서 맞이하는 카이도의 바람, 옆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할머니가 건네주신 훈제굴, 덜컹덜컹거리며 느리게 움직이는 보통 열차의 소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의 풍경, 혼자이지 않아서 좋은 유스호스텔,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던 흐린 날의 하나비, 편의점의 스티커를 모아 마침내 구입하게 된 벼랑위의 포뇨 그릇까지. 그리하여 이 여행의 끝, 그녀의 상처는 아물어졌는가. 그건 이 책의 하얀색 겉표지를 벗겨보면 알 수 있다. 

       아쉬운 건, 그녀가 맥주를 조금만 좋아했더라면, 카이도의 맥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에... 그러니까 요 맥주로 말할 것 같으면... 으로 시작하는 그녀스러운 수다를 잔뜩 들으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을텐데. 고 맛들을 상상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아. : D 헤헤- 고마웠어요, 지은씨- 지은씨 덕분에 이번 연휴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어요. 저도 올해 꼭 카이도 여행을. 기필코. 

       나는 역에서 미리 산 커피와 함께 내 자랑스러운 전리품들을 뜯었다. 먼저 류게츠의 신작 쿠로미츠카린, 흐음, 우리 할머니가 좋아할 맛이야. 맛동산 같은 만쥬였다. 겉은 쫄깃한 빵, 속은 부드러운 앙금. 흑설탕맛이 깔끔하고 진했다. 보후린은 참으로 맛있는 아몬드 비스킷이었다. 지나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우물무물. 어떤 사람의 눈에는 그냥 그런 시골 풍경에 그냥 그런 시골역들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모두가 흥미진진했고 소중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 이 심심한 풍경과 부드러운 초록색이 지금의 나에게 치료제가 되어주겠지. 나는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밥을 꼭꼭 씹어 먹듯 눈 속에 꼭꼭 담았다. p.66_7.보통 열차를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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