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선샤인 클리닝 - 피칸파이를 추천해드려요
    극장에가다 2009. 9. 18. 00:06



        이 날,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러 투다리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 번째 안주 (내가 다 먹었으니 나의 안주구나) 시샤모를 시키기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 비를 맞으며 지하철 역까지 걸었고, 나는 (이건 온전한 나) 집에 오는 길에 분홍색 타자기가 그려진 주간지를 샀다. 그 날, 우리는 첫 번째, 두 번째 안주, 그러니까 감자베이컨말이와 육포를 먹으면서 어쩐지 이 영화는 뭔가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더 깊이, 더 멀리 나갔어야 했는데,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고. 그렇게 끝나 버린 게 못내 아쉽다고. 그래도 좋은 영화였다고. 그 날, 나는 영화를 보면서 울어버렸는데, 영화 속 자매가 어느 날 밤에 우연히 티비에서 엄마가 출연했던 (그렇게 보고싶어했던) 영화의 '피칸파이를 추천해드려요' 대사를 들어버렸을 때, 그리고 그 대사가 두 사람에게 너무나 커다란 위안이 되어주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코 끝이 찡해졌다.

        이 영화의 보석은 에이미 아담스. 나는 그녀에게 홀짝 반해버렸다.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새들을 불러모으던 고 귀여운 공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내게, <선샤인 클리닝>의 그녀의 모습은 뭐랄까. 뭐랄까.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 다음 책을 주문할 때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 DVD를 같이 주문할 거다. 그렇게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가.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좀더 많은 표정을 보고싶어졌다. 이 영화가 이렇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종종 짓고 했던 쓸쓸한 표정은 잊을 수가 없지. 정말 잊을 수가 없지. 천국으로 전해진다는 커다란 차 안의 무전기에 대고, 엄마가 그립다고 이야기 하는 모습, 아들의 생일날 피자집 화장실 안에서 동생에게 누군가 널 돌봐줬어야 했어, 라고 말할 때 그녀의 따뜻하고도 외로운 표정. 좋았다. 정말 좋았다. 

        영화 속 주인공 자매의 엄마는 자살을 했다. 그녀들이 아주 어렸을 때. 그녀들은 앞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들어와 엄마의 죽음을 생생하게 목격했고, 그 죽음의 현장과 엄마의 부재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그녀들에게 아픔이 되었고,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쓸쓸했고, 외로웠고, 슬펐다. 영화는 그렇게 자라난 자매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그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절망적인 죽음의 흔적을 말끔하게 없애라고, 그리하여 산 자가 다시 살아갈 수 있게, 그래도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는 걸 보여주라고. 성인이 된 로즈(에이미 아담스)는 이제 엄마의 멈춰버린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거다. 그녀는 세상은 때때로 손목을 확 그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잔혹하고 힘든 곳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살만한 날들이 더 많다는 걸, 종종 아주아주 행복할 때도 있다는 걸, 천국에 있을 엄마에게 전하고 싶었을 거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저 앉지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을 내는 것으로 말이다. 그녀가 자신의 엄마처럼 천재 아들을 두고, 장사감각 제로인 늙은 아빠를 두고, 평생 돌봐줘야 할 동생을 두고, 손목을 그어버리는 일은 없을 거다. 대신 당신이 떠난 그 핏자국을 열심히 닦는 거지. 살아야 하니까. 맛있는 피칸파이를 추천받을 수 있게.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