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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예감 -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같은
    서재를쌓다 2007. 6. 9. 16:50
    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민음사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집을 떠났던 야요이도, 스무살의 나 자신도. <슬픈 예감>은 열아홉살의 야요이의 이야기이다. 표면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그 나이가 늘상 그렇듯 수많은 내 안의 갈등을 겪고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처음이다. 언젠가 읽어봐야지 생각만 했었는데, 결국 제일 처음 읽게된 그녀의 소설이 <슬픈 예감>이다. 살펴보니 이 소설이 바나나의 첫 장편 소설을 다듬어 다시 재출간한 것이라는데, 이를테면 내가 그녀의 첫 장편작부터 읽으려고 다른 작품들을 미뤄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에 읽기 시작했다가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일본 소설 특유의 건조한 문체에 순정 만화같은 스토리에 아기자기한 감성들이 듬뿍 담겨져 있다. 푸른 나무의 냄새, 깜깜한 밤과 반짝이는 별, 모락모락 피어나는 홍차의 향기, 파인애플로 만든 새콤한 카레의 맛이 소설 전체에 가득하다.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이고 순정만화같은 이야기라, (특히 쭉 남매로 자라온 남동생과의 관계는 감정이입을 하기 힘들었다)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기자기한 일상의 촉각, 시각을 풍요롭게 만드는 표현들이 어우러져 작가 특유의 세계로 느껴지는 듯 하다.

      <슬픈 예감>을 보면서 자꾸만 영화 <와니와 준하>가 떠올랐다. 촉촉한 여름의 풍경들, 남동생과의 떨리는 순간들, 여름날의 자전거. <슬픈 예감>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와니와 준하> 같은 영화였음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나의 스무살의 갈등들이 소설 속 야요이처럼 엄청난 비밀을 품고 시작되고 끝나지 않았지만, 여고시절, 사춘기를 겪으면서 한번씩 꿈꾸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를 <슬픈 예감>은 따뜻하고 무심하게 그리고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처럼, 샤워 뒤 마시는 홍차의 향기처럼 아기자기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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