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 밝은 미래
    극장에가다 2009. 5. 19. 22:12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영화를 보기 전에 '이를테면, 여행작가'를 만났다. 작가의 말대로 서른 살 남자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닭살스런 제목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의 생선 작가. 물론 나는 그를 아주 가끔 지켜봤지만, 그는 단 한번도 내 존재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 자리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작가와의 만남' 자리였다. 이 이벤트를 인터넷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이벤트 신청의 달인인 나는 어느새 응모버튼을 누르고 있었는데. 난 그를 아주 가끔(오해마시라. 난 스토커가 아니랍니다. 미니홈피와 라디오를 통해) 지켜본 사람이지만, 그의 책은 사지도, 빌려 읽지도 않았으니 '이를테면, 아주 불량 독자'였다. 하지만 이벤트에 아주 잘 당첨되는 나는 이번에도 떡 하니 당첨이 되었고, 덕분에 그의 책을 구입하고, 제대로 된 독자 준비 모드에 돌입했다. 

        쭈빗쭈빗한 표정으로 생선 작가는 이야기를 잘도 하더라. 아주 좋은 질문이예요, 그 질문에 정말 답하고 싶었어요, 질문 좋았구요, 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 생각나는 건 그의 책이 10만부나 팔렸다는 것. 이영은에게 고맙다는 것. 이 책은 90%가 진실이고, 10%가 픽션이라는 것. 요즘 카드값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 객석에 있는 누군가에게 저 분은 왠만하면 남들이 다 잘 찍는 폴라로이드 사진도 못 찍는 분이예요,라고 말한 갓. 돌고래 아이큐가 나왔었던 것, 다시 라디오에서 잘렸다는 것 등등. 그 중에서도 마음에 두고두고 남았던 말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주위사람들이 여행 가기 전에 다 걱정했어요. 다들 내가 어떻게 먹고 살건지를요. 영화가 끝나고, 사인도 받고 나서 친구랑 이야기를 하며 난 그 말이 좋았어, 하니까 친구가 말했다. 난 이 부분이 더 좋았어. 지금은 그 분들이 마치 자신들이 키운양 뿌듯해하고 있어요. 이 말. 

        다음 책을 내게 된다면, 역시 여행책이 될 거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책은 추운 지방을 여행한 이야기라고. 자신은 추운 것을 못 견디는데, 추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있다고. 곧 아이슬랜드로 떠난다고 했다. 그런 말도 했었다. 자신은 대부분 혼자 여행을 떠나는데,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고. 그렇게 고독할 수가 없다고. 아주 쓸쓸하다고. 그리고,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억센 미혼모 아줌마 공효진과 아빠 없이 자란 깍쟁이 신민아가 자매로 나오는 영화. 개인적으로 이 제목의 부사가 마음에 안 들지만.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영화는 괜찮았다. 이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는 반전이 있다. 그러니까 반전이 있다더라,는 말을 듣고 영화를 보면 눈치 빠른 사람은 영화 중반 정도부터 그 반전이 뭔지 알 수 있는 반전인데, 그게 좀 강력하다. 웃기기도 하고. 흠. 이 영화는 그 반전 후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니까. 그걸 추스리는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공효진은 귀엽고, 신민아는 예쁘고. 배경이 되는 제주도도 참 예쁘다. 언젠가 제주도를 배를 타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이 영화에서 그런다. 파도가 부글부글 일고, 커다란 배 위에는 벤치가 있다. 거기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맥주고 마실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다. 나는 영화 보기 직전에 '이를테면, 여행작가'를 만났고, 영화볼 땐 내 자리 바로 앞에 '이를테면, 여행작가'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를 그야말로 '여행'에 초점을 두고 봤다. 

        영화가 끝날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행이란 결국 떠난 그 곳에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지. 신민아가 그랬듯이.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어떤 부분이 성숙해지는 게 여행이지. 신민아가 그랬듯이. 그렇다면 신민아가 그랬듯이, 여행을 떠나면 내 인생에 있어 어떤 자그만, 혹은 커다란 비밀 하나쯤 알게 될까? 그렇다면 신민아가 그랬듯이, 여행을 떠나면 내 몸에, 혹은 마음에 곧 아물어질 어떤 자그만, 혹은 커다란 상처 하나쯤 생기는 걸까? 이를테면, 용서와 이해를 모르는 내가 용서와 이해를 시도해 볼 용기를 만들어 오는 것. 그게 여행일 거야, 이런 잡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가 역시 결론은 신민아는 정말 예쁘고, 공효진은 아주 귀엽다는 것. 이제 서른 살인 '여자'는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그리 닭살스럽지는 않은 제목, 사실 꽤 마음에 드는 제목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를 읽을 차례다. 생선 작가는 책에 생선 그림과 함께 '밝은 미래'라고 사인해주었다. 그래, 이 영화의 결말은 이거다. 밝은 미래.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