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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책과 영화 이야기들
    모퉁이다방 2009. 4. 26. 21:30

        오늘은 달게 늦잠을 잤고, 꿈도 꿨다. 한옥집으로 이사하는 꿈이었는데, 그 한옥집이 근사했다. 국민학교 친구들도 만났다. 그 한옥집은 지금 사는 곳보다 꽤 먼 곳에 있었고, 친구들은 먼저 떠나는 바람에 나는 지리로 모르는 그 곳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서성거렸지만, 깨어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뭐 괜찮았던 꿈이었던 것 같다. 꿈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이야기를 해버리거나, 어딘가에 끄적이고 나면 이상해 보이는 이야기니까. 고 느낌이 중요한 거니까. 괜찮은 꿈이었다. 최근에 내 주위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중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줬다. 꿈을 꾸면 좀 더 즐거울텐데요. 꿈을 꾸면 꿈꿀 수 있으니까. 내 생각은 그렇다.

        지난 책과 영화 이야기들. 그냥 보고 흘려버린 것들이 많아서, 간단하게 남겨두려고. 일요일 밤이고 하고. 반짝이 옷을 입고 찰랑거리는 파마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김연아가 이쁘기도 하고. 내일은 월요일이기도 하고. ㅠ 그래도 다음주는 4일이기도 하고.


    숏컷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집사재

    4월 초의 일. 갑자기 카버의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조금 쓸쓸한 이야기들이 읽고 싶어졌다. 읽고 난 뒤에는 센 술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킨 것처럼 몸 속 어느 구석이 따스해지는. 그래서 책장에서 아직 다 읽지 못한 카버의 책 중에서 골라냈다. 난 분명히 이 책을 읽다 말았었는데, 그래서 앞 부분의 단편들의 내용들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신기했다.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지난 번에도 이런 기분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걸. 소설을 읽는 내내 알코올 중독 소설가 카버가 따라주는 독한 술을 한 잔, 두 잔 받아마셔서 그런가. 또 몇 년 뒤에 이 책을 읽다 만 것마냥 집어들게 될까. 신기하게도 읽은 지 한 달이 지나지도 않은 지금. 책의 앞 부분 주인공들밖에 기억이 안 난다. 그 내용들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거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들에 대해 코멘트한 내용들도 고 앞 부분만 또렷하다. 신기한 일이지.



    3월의 일. 원작소설보다 극적인 면을 '헐리웃스럽게' 부각시킨 영화. 뭐. 나는 재밌었다. 나중에 'W'에서 이 영화에 나온 아역배우들의 실생활을 취재해 보여줬는데, 그 때 좀 그랬다. 영화가 허상인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씁쓸했다.


    3월의 일. 이 영화에선 브래드 피트랑 프랜시스 맥도먼드만 생각났다. 세상에 존 말코비치도 생각 안 난다니까. 둘의 콤비가 어찌나 웃기던지.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귀여워 죽겠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또 펼쳐놓아주시니. 그런데 또 끝나고 보면 이게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지. 아, 자꾸 브래드 피트가 귀에 이어폰 꼽고 웨이브 추던 장면이 생각난다. 귀여워, 귀여워!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시아출판사

    친절한 J씨는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 갔지만 없었다,는 글을 보고 이 책을 가져다 주었다. 게다가 나더러 이 책을 가져도 좋다고 말해주었다. 아, 친절한 J씨.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나는 미야베 미유키에 푹 빠졌다. 흠. 그리고 그 관심이 고스란히 일본 추리소설에 옮겨갔다. <화차>는 슬프고도 따스한 소설이었다. 꽤 오래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지금의 우리 사회에 대입해봐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설정이다. 결국 개인의 파산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이야기. 책장을 펼치면 단숨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서 읽는 재미가 있다. 지하철에서 잠깐 읽었는데 새끼 손가락 손톱 길이만큼 읽어버릴 정도. 이 책은 정말 강추다. 엔딩이 인상적이다. 이야기는 끝났는데도, 현실에서 이 이야기가 계속되는 것같은 느낌이 드는 엔딩이다. 예전에 신경숙이 말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울 땅, 한국 땅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그러니까 힘을 내어서,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딱 고 느낌. '좋은' 소설이다.


    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그리하여 시작된 나의 미야베 여사를 향한 팬심. 도서관에 가서 골라온 책이다. 원래 친절한 J씨가 골라준 세 가지 책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그 책들이 다 없어서, 이 책으로. 단편집인데, <화차>만 못하지만, 재밌다. 헌책방 주인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가 등장하는 연작단편집이다. 역시 따스하고, 재밌다. 할아버지 손자 콤비 덕분에. 마지막 단편 '쓸쓸한 사냥꾼' 실종된 미스터리 작가의 미완성 소설을 누군가 현실에서 재현하겠다는 메시지가 오면서 시작된다. 예상대로 미완의 소설 내용은 연쇄 살인 사건. 이 단편이 <모방범>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방범>을 찾아 도서관에 갔지만, 역시 인기있는 미야베 여사의 책은 대출 중이시다. 대신 <이유>를 빌려왔다. 아, 여름까지는 미야베 여사에 빠질 수 있을 듯하다. 게다가 아는 동생에게서 <백야행>이 굉장히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미야베 여사 소설 읽다 슬쩍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로 빠져보아야지. 근데 정말 침대 위에서 그 자세 그대로 저녁에서 새벽까지 <백야행> 읽은 거야? 그 정도로 재밌었던 거야?


    3월의 일. 시사회로 본 영화. 그냥 예쁜 영화 본다는 생각으로 갔다. 아무 생각없이 보면 좋은 영화. 앤 해세웨이가 예쁘게 나온다. 케이블에서 마주치면 딱 좋을 영화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빔 벤더스

    4월의 일.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극장에서 보면서 이 영화를 집에서 음 봤던 때가 떠올랐다. 여름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니다, 시원한 여름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말끔하게 샤워를 마치고창문을 활짝 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봤다. 어떤 노래는 너무 슬퍼 눈물이 절로 났다. 극장에서는 내가 못 본 부분들이 마지막에 이어 나왔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그리고 왠지 모르게 제천에서의 밤이 생각났다. 언니와 함께 묶었던 모텔, 아름다웠던 선율의 사노바, 밤까지 이어졌던 후끈했던 더위, 그리고 부채질을 하며 봤던 호수가의 영화, 샤워하고 걸어가서 본 3편의 심야 영화. 결국 3편 다 못 봤지만. 그 날이 그리웠다.



    4월의 일. 이 영화는 감독 때문에 본 영화였는데. 그리고 그 날은 좀 가볍고 즐거운 영화가 보고 싶었기에. 망했지. 뭐. 보다가 간만에 극장에서 잤다.



    4월의 일.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보고 잔뜩 기대했다가 (난 숫자에 관련된 영화면 일단 좋다!), 쓰레기같은 영화라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별 기대없이 본 영화. 재밌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장면. 이걸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거니깐. 도미노마냥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란. 영화는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여자 캐릭터. 왜 맨날 그런 고집쟁이 보조적인 여자 캐릭터의 몫이란 말인가.      



    4월의 일. 이 제목 짓는 센스하고는. 원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제목을 요딴 식으로 바꾼거야. 쯧쯧쯧. 일단 아름다운 풍광. 아름다운 배우들. 페넬로페 크루즈의 표독스런 연기. 스칼렛 요한슨의 나들이 옷은 정말 눈부셨다는. 비키 역의 레베카 홀에게도 반했다. 그리고 감미로운 음악들. 바르셀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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