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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리더 - 영화와 책
    극장에가다 2009. 4. 15. 00:12


       <더 리더>를 본 건 3월의 일이다. 김연수의 <더 리더>에 관한 칼럼은 읽은 건 4월의 일. 시간이 빨리가고 있다. 그동안 영화잡지를 꾸준히 사(얻어) 보면서 <더 리더>에 관한 글을 많이 읽었다. 좋다는 글도 있었고, 좋지 않다는 글도 있었다. 어떤 부분은 거듭 읽으면서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부분은 말도 안돼,라며 혼자서 열을 내며 흥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읽은 김연수의 <더 리더> 칼럼. 첫 줄 '본디 이 칼럼이 고향친구를 떠올리며 영화에 대해 떠들어댄다는 취지로 마련됐다는 걸 알지만, 오늘만큼은 그 정다운 얼굴이 좀 빠져주셨으면 한다.'로 시작해 마지막 줄 '<센스, 센서빌리티>부터 볼 테니까 아예 칼럼제목을 '나의 친구 그녀의 영화'로 하면 안될까?'를 읽는 동안 내가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였을까. 

       같이 영화를 봤던 H씨는 (내게 거의 매주 영화잡지를 '그냥' 주는 고마운 사람) 이번 주 씨네21을 지난 토요일에 사서, 김연수 칼럼을 읽고나서 (H씨는 거의 이 칼럼과 Must See 기사만 읽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주 사서, 깨끗하게 보고 나 보라고 준다) 문자를 보냈다. 이번 칼럼은 내가 정말 좋아할 것 같다고. 친구 이야긴 안 하고 책과 윈슬렛 이야기만 한다고. 응. 정말 그랬다. 좋았다. 이런 칼럼. 꼭 내 마음을 적어놓은 것 같은 기분. 정말 나도 영화를 볼 때 이런 느낌이었다. 이미 책은 읽었고, 그녀의 비밀을 알아버린 상태였다. 책을 읽을 땐 미하엘의 감정에 팔십프로 이상 이입되었고, 영화를 볼 땐 그 반대였다. 한나. 영화는 한나의 이야기다. 거기선 한나의 행동, 눈동자, 표정만 따라가게 된다. 책을 읽고 난 후라 더더욱. 나도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걸 순전히 한나 때문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미하엘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마음 아팠는데, 영화에서는 한나가 그런 사람이었다. (결국 두 사람 다 외로운 사람이다) 강해보이지만, 평생동안 철저하게 혼자였던 사람. 교도소 안에서 이제는 늙어버린 꼬마를 만났을 때 그녀의 표정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그녀가 고독했고, 고독하고, 고독할 거란 걸.

        내가 산 책에는 케이트 윈슬렛이 표지에 있다. 그녀는 목욕 중이다. 역시 고독한 얼굴을 하고서 욕조 안에 앉아 있다. 얼핏 보면 미소 짓고 있는 듯도 하지만, 확실히 이건 고독한 표정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뒷 표지에 미하엘이 있을 줄 알았다. 표지의 케이트 윈슬렛의 시선을 쭉 따라가서 뒷 표지에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남자, 미하엘이 있을 것만 같았다. 욕조 안에서 함께 목욕을 하고, 책을 읽고, 사랑을 나눴던 미하엘이.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엔 그 곳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겠더라. 뒷표지를 넘겨봐도, 뒷 표지의 책 날개까지 따라가도 거기엔 아무도 없다. 이 욕조 안에는, 이 어둠 안에는 온전히 한나, 케이트 윈슬렛 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든 생각은 역시 케이트 윈슬렛의 팬이 되길 잘했다는 것. 그녀는 이 영화 안에서 진정 '아름답다'. 김연수의 표현대로 그녀의 답장을 받는다면 기꺼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김중혁의 칼럼은 포기할 수 있다. (미안요) 그리고 체홉의 <강아지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어봐야 되겠다는 생각. 누군가 내게도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른이 된 꼬마, 랄프 파인즈의 목소리를 듣는 케이트 윈슬렛의 표정이 어찌나 행복해보이던지. 꾹꾹 눌러 쓴 꼬마같은 손 글씨에 눈물이 막 쏟아졌다. 그리고, 그리고 언젠가 이 소설을 다시 읽어야지. 

       아. 나의 경우는 그런 단점이 있었다. 내가 책을 읽은 시기는 케이트 윈슬렛이 아카데미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였다. 랄프 파인즈가 출연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상태였고. (꼬마 미하엘 역의 배우는 이름을 들어도 잘 몰랐으니까) 그러니깐 영화 뿐만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캐스팅이 완료된 거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들의 외형들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내 머릿 속엔 온전한 케이트 윈슬렛과 랄프 파인즈이 연기할 준비를 하고 몸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랄프 파인즈가 문장을 따라 행동했다. 케이트 윈슬렛은 내가 아는 그녀의 목소리 그대로 미하엘에게 말했다. 책을 읽어달라고. 그 전에, 영화 캐스팅 소식을 알기 전에 읽었으면 더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어쨌든 영화도, 소설도 둘 다 좋았다. 아, 하나만 먼저 본 상태라면 나머지 하나도 늦기 전에 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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