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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러들의 도시 -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도시'
    극장에가다 2009. 3. 8. 15:15


        오늘 내가 아는한 가장 착한 킬러를 만나고 왔다, 라고 쓰고보니 <레옹>이 생각났다. 흠. 오늘 내가 기억하는한 가장 순진한 킬러를 만나고 왔다,라고 쓰니 <킬러들의 수다>도 떠오르고. 생각해보니까 킬러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구나. 아무튼. <킬러들의 도시>를 봤다. 사실 이 영화 씨네21을 읽지 않았다면 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영화였다. 제목도 그렇잖아. 촌스럽게. 킬러들의 도시라니. 얼마전부터 다시 씨네21을 읽기 시작했는데, <레볼루셔너리 로드>도 'Must See' 코너에 소개되어 있어 단번에 보러간 거다. <킬러들의 도시>도 'Must See'에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면, 보지 않았을 거다. 이번주 'Must See'는 <도쿄 소나타>. 이번주는 <숏버스>도 드디어 개봉하고. 볼 영화들이 많다.

        'Must See'라 보러가긴 했지만, 별 기대는 없었다. 킬러들이 나오고, 뭐 그렇고 그런 총격전이 이어지다가 누군가는 죽고, 또 어떤 누군가는 살고 그러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니, 이 영화 대박이었다. 일단 재밌다. 웃긴다는 얘기다. 처음엔 이 장면 좀 웃긴데 웃어야 하나, 라는 심정으로 슬슬 눈치를 보며 웃음을 참았는데, 나중에 결국 폭발했다. 웃긴다, 이 영화. 세 캐릭터 모두 팔딱팔딱 살아 날뛰는데, 배우들의 연기도 일품이다. 콜린 파렐은 숯검댕이 눈썹으로 연기하는 배우. 아이처럼 금새 울상이 되는 그 얼굴표정이라니.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물을 한 방울 흘려주는 감수성. 이런 사람은 킬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켄의 말에 백번 동감. 켄 역의 맡은 브렌단 글리슨의 연기도 말할 것도 없고, 해리역의 랄프 파인즈는 왜 그렇게 웃기는 것이야. 랄프 파인즈가 출연하는 영화를 본 게 언제지? 이 영화에선 살이 많이 빠져서 늙어보이더라.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 세 배우말고 또 하나의 주인공이 따로 있는데. 그건 바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킬러들의 '도시'다. 원제가 <인 브리주>던데,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도시 이름이 브리주다. 콜린 파렐이 영화 속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따분하고 할 일 없는 도시, 브리주. 벨기에에 있는 작은 관광도시라는데, 이 도시의 풍경이 좋다. 킬러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도시다. 도시 속의 종탑이나 운하, 숙소의 풍경들이 중세시대의 모습같다. 그 곳에서 킬러들의 피가 돌틈 사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거다. 멋지다. 초반에 보면 켄이 레이를 데리고 미술관이나 유적지 등을 관광하는데, 그 장면들이 참 좋았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이어지는 그림 앞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그 공기. 그 분위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브리주 가고 싶어질 거다. 종탑 앞 술집에서 동그란 거품맥주 마시고 싶어질 거다. 오죽하면 포스터에 어색하게 콜린 파렐이 맥주 들고 있겠나. 영화보면 저 포스터가 이해될 터.

        잔잔하고 고요한 도시에서 울러퍼지는 총격전. 콜린 파렐의 어린 아이같은 표정. 켄이 말하는 기회. 행복해질 기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 그리고 해리가 말하는 원칙. 원칙을 어긴 자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해리가 총알을 장전하는 순간, 그 고딕풍의 고요하고 단단한 도시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 풍경은 영화를 봐야 한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는 좋다.라는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으니깐. 그나저나 아이를 죽인 죄책감에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는 킬러라니. 미술관 관람에 열을 올리고, 예의바른 킬러라니. 친구로부터 사랑했다,는 말을 듣고는 단번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킬러라니. 킬러의 첫 번째 조건은 냉철함 아닌가. 이 킬러들, 정말 킬러가 될 자격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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