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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 땡스, 알렉스
    극장에가다 2009. 2. 15. 22:40


       올해 발렌타인 데이에는 동생이랑 동생 남자친구랑 셋이서 영화를 봤다. 극장에 도착하니 미리 예매를 못했으면 영화는 물 건너 갔을 정도로 사람들, 아니 연인들이 북적북적했다. 건대 롯데시네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건 처음 봤다. 예매해 둔 티켓을 찾는데 두 사이트에서 따로 예매하는 바람에 한 좌석만 떨어져 있었다. 그건 당연히 내 자리. 그 수많은 연인들 틈에 끼여서 홀로 영화를 보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제 내게는 연애세포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난 건어물 여자.

    여기, 직장을 핑계로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떠나간 애인을 그리워하는 남자, 그렉이 있다. 곤드레만드레 취한 어느 밤, 그는 ‘내 여자’가 잠시 묵고 있는 호텔로 전화를 건다. 그때 벨보이 하는 말, “정말, 연결해 드릴까요?”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전화를 끊은 그 남자의 생각. ‘항상 내게 이렇게 말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이별이 좀더 쉬워질 수 있을 텐데…….
    -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2 보도자료 中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2>의 보도자료의 저 글귀 때문. 정말 연결해드릴까요?,에서 이별이 좀더 쉬워질 수 있을 텐데,로 이어지는 문장 때문에. 헐리우드 로맨틱 영화의 말랑말랑함으로 무장된 영화일 게 분명했지만(심지어 나는 그런 영화 좋아하잖아), 저 책들을 원작으로, 빵빵한 헐리우드 배우들 데리고,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로맨틱 홀리데이>나 <러브 액츄얼리>처럼 좋은 영화였음 했다.

       결론은 쏘쏘. 그렇게 나쁜 영화도 아니었고, 기대한 만큼 좋은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에는 남자들이 반하지 않은 '당신'들이 등장하는데, 캐릭터들이 조금 극단적이다. 단발에 웨이브 머리 지지는 착각이 지나친 여자다. 남자들이 아무 뜻 없이 예의상 던진 말과 몸짓에 감동하고, 그가 나에게 반했다고 착각하는 여자. 드류 베리모어는 메리라는 아주 평범한 이름의 여자로 등장하는데, 그녀의 외모가 아까울 정도로 온라인형 인간이다. 이메일, 전화, 화상채팅에 길들여진 여자. 

        제니퍼 애니스톤은 결혼에 목매단다. 완벽하고 자상한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동거 중인데, 이 둘 사이에 부족한 게 딱 하나, 그게 바로 결혼이다. 그런데 상대 벤 애플렉은 결혼은 죽어도 싫단다. 그런데 제니퍼 애니스톤 아니면 다른 여자도 싫다는 거지. 한편, 스칼렛 요한슨은 섹시한 여자, 애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는데 하필 유부남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가수의 길로 안내해 줄 친구를 아는 남자. 섹시함으로 밀어붙인다. 내가 보기엔 제일 애매했던 캐릭터였다. 애너가 진짜 벤을 사랑했을까?

        나의 제니퍼 코넬리. 나는 배우 제니퍼 코넬리가 매우 좋다. 아주. 그녀는 일단 아름답고, 게다가 슬퍼보인다. 사연이 있는 듯한 눈매를 가진 배우. 아무튼 이 영화에서 제니퍼 코넬리의 역할은 좀 실망스러웠다. 얼굴도 영화 내내 지쳐보이고(그런 캐릭터이긴 했지만) 결벽증에 신경질적인 캐릭터. 남편을 사랑하지만, 믿지를 못한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 아무튼 이 영화에서 그 미모가 아까울 정도로 너무 생기없게 우울해보여서 안타까웠다.

        영화는 이 '당신'들이 진정한 사랑의 '그'를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초반부에는 계속 이 말이 반복된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가 당신에게 반하게 만드느냐, 그런 이야기다. 결말은 사랑을 찾기도 하고, 잃기도 하고, 그러면서 자신을 찾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남자들은 잘 모르겠으나(이건 여자들의 영화다) 여자 캐릭터들은 조금씩 뜯어서 잘 버무려 놓으면 나랑 비슷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전부 다 공감할 순 없지만, 영화에 드문드문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뭐. 결론은 그렇게 발렌타인 데이를 넘겼다는 말. 사실 난 그런 '데이'가 별로 상관없는 아이지만(이건 모조리 상술이라고 울고짓는 연애세포 제로인 여자다, 난). 영화를 보고 나서, 삼겹살을 먹고, 산울림에 가서 맥주랑 진토닉을 마셨다. 거기서 Keane의 'Somewhere only we know'를 신청해 들었다. 이 노래를 원래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와서 좋아라했던 노랜데, 이 영화의 후반부에 나온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 보면 알렉스,라는 남자가 나온다. 관찰한 게 많아서 연애에 대해서 뭐든 잘 아는 남자. 그래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 발짝씩 물러나서 쿨하게 포즈 취하고 있는 남자. 결국 그에게도 쿨하게 포즈를 취하고만 있을 수만은 없는, 그래서 세 발짝 앞으로 뛰어 나가 자빠지는 사랑에 빠진 여자가 생긴다. 그야말로 '건어물'이었던 남자가 '문어'가 되는 순간. 그걸 보는 순간, 나도 '사랑'을 해야겠구나, 생각했다. 나는 쿨하지도 않고,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지도 못하면서 늘 한발짝 물러서서 그래, '그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어' 쓸데없이 떠들어대기만 했지. 이제 나도 조금은 감정에 충실해야지. 건어물 여자는 너무 슬프잖아, 친구. 단 스무살때처럼 너무 나대진 말고. 아름답게 유영하는 문어가 되야지. 땡스, 알렉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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