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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마음의 풍금, 을 보는 주말
    극장에가다 2009. 2. 2. 10:38

       아이언앤와인의 'Flightless Bird, American Mouth'을 반복해서 듣는 주말.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나가지도 않고, 이틀 내내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잠만 잤다. 뉴스에서는 이제 한 차례의 추위만 지나면 봄이 온다는데. 난 이 겨울이 좀 더 계속되었으면하는 바람뿐.

     
        2009년 이상문학상을 주문하면서 <내 마음의 풍금> DVD를 샀다. 오늘 느즈막히 일어나서 TV를 보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선 DVD를 봤다. 언제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극장에서였는지, 비디오였는지도. 다시 본 영화는 좋았다. 귀엽고, 아련하고, 잔잔하고, 소박하고.

        처음 이 영화를 보고서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영화를 보고서 든 생각은 이 영화가 짝사랑 영화라는 거. 일단 해피엔딩은 잊자. 결말을 제쳐 두고 보면, 이 영화는 그야말로 '그 사람 등짝만 바라 보는' 짝사랑의 릴레이 장이다. 짝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의 펄렁이는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그 사람 기분이 어떤지. 짝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의 등만 봐도 지금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주 슬픈 이야기다.

        홍연이는 수하를 좋아하고, 수하는 은희밖에 안 보이고, 은희는 정혼한 사람이 있는. 어째 사랑이란 늘 이런 식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홍연이는 수하가 팔꿈치만 꼬집어줘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가지고 논밭을 앞에 두고 고함을 질러대고, 수하는 지가 물에 빠진 홍연이를 구해놓고 아무 한 일도 없는 은희한테 고맙다고 싱글벙글 난리다. 은희는 홍연이 말처럼 여우인 게 틀림없다. 정혼할 사람이 있으면 처음부터 수하에게 선을 딱 그어야지. 응? 짝사랑을 받는 쪽은 알거든. 누가 자길 지독하게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는 눈빛부터 다르니까. 나한테 다가오는 발걸음부터 들떠 있으니까.

        뭐. 결국 다 잘 됐다. 모두 제 짝을 찾았은 셈이니까. 뒤늦게 깨닫는 사랑도 있는 법이니까. 은희가 떠난 뒤 수하는 술에 잔뜩 취해 하숙방에 들어와서 불도 안 켜고 컴컴한 방 안에서 LP판을 틀어 음악을 듣는다. 이 때 울려퍼지는 음악. I went to your wedding,으로 시작하는 노래를 찾아 들었다. 그 곳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I uttered a sigh, and then whispered goodbye, goodbye to my happiness.

        그리고 수하가 크레용 사오라고 준 돈으로 만화방에서 만화보면서 놀고 있던 아이의 뺨을 때린 다음 교실의 칠판. 반대말 쓰기, 라는 국어 수업 중이었고, 아이들이 나와서 어떤 단어들의 반대말을 적고 있었다. '사실'의 반대말 '거짓'. '행복'의 반대말 '불행'. '사랑'의 반대말 '미움'. '용기'의 반대말 '두려움'. 이런 식. goodbye, goodbye to my happiness.  

        1월이 갔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무서울 지경이다. 2월은 달이 짧으니 얼마나 빨리 갈까. 봄이 오면 세상이 얼마나 환해질까. 1월에 나는 엠피쓰리플레이어에 좋은 노래들을 잔뜩 넣어놨다. 라라라에 나온 이소라의 영상도 넣고, 내가 좋아하는 플럭서스의 TAKE 1 영상도 넣어뒀다. 스페이스 공감에 나왔던 제이슨 므라즈도 넣어두고 할머니 댁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한 번 봤다. 좋아서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렸을 정도다. 앞으로 99번은 더 봐야지. 닳고 닳도록. 2월. 봄. 그래, 잘해보자. 늘 결심뿐이지만, 이번에도 잘해보자. 홍연이처럼. '거짓'의 반대말은 '사실'.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 '미움'의 반대말은 '사랑'. '두려움'의 반대말은 '용기'. 용기.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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