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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이루세요, 신경숙
    서재를쌓다 2008. 11. 22. 16:46
       어제 <엄마를 부탁해>로 신경숙 작가님을 만나는 자리에 다녀왔다. 강연회라고 하기도 그렇고, 낭독회라고 하기도 그렇고, 신작을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단, 표현이 딱 적당한 자리였다. 백가흠 작가도 함께였는데, 무척 목소리가 좋으셨다는. 1시간동안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그 시간이 정말 후다닥 가버렸다. 작가님이 이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하셨을 때 자리가 파했다.

       무슨 얘기를 하셨더라. <깊은 슬픔>이 94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며, 다음 작품으로 아름다운 연애소설을 한 편 써 볼까하는 생각을 어젯밤에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소설가는 늘 소설을 구상하고, 죽이고, 또 구상하는 것이라며, 살아남는 것만이 소설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이기도 하고, 여러분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폭신폭신한 극장 의자에 앉아서, 작가님 얼굴이 아주 잘 보이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내가 읽었던 그녀의 소설들을 생각했다. 가장 좋아하는 <외딴방>. 그 소설을 읽으며 울었던 기억. 부석사가 등장했던 단편도 기억이 났고, <리진>도 생각났다. 차마 다 읽지 못하고 남에게 줘버린 <바이올렛>도 생각났다. 그리고 <깊은 슬픔>. 완과 세와 은서. 겨울이 가기 전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엄마를 부탁해>도. 이제 반 정도 남았다. 이 소설때문에 매일 아침 훌쩍거렸다. 이 소설은 작가가 되기도 전에 구상했던 아주 오래된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자신에게 많은 것을 하게끔 해준 엄마를 위한 소설이라고.
     
        그리고 낭독한 부분. 작가님은 딸의 입장에서 쓴 1부보다, 첫 아들의 입장에서 쓴 2부가 훨씬 집필할 적에 집중력도 좋았고, 잘 쓰여졌다고 했다. 역시 그 2부에서 고른 부분이다. 나도, 나도 정말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 읽으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혼났었다.

    p.93-94

       이 부분을 낭독하시는데, 작가님이 자꾸 피식 웃으셨다. 아니, 센 콧바람을 마이크 위로 자주 뱉어내셨다. 아니, 그건 사실,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고여서 당황하신 거였다. 그래서 이 부분의 낭독이 참 좋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눈 앞이 흐릿흐릿해졌으니까.

       또 무슨 말을 나눴더라. 눈이 보이지 않는 이의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고도 하셨고, 자신은 행복하라고 글을 쓴다고 하셨다. 언어영역에 작가님의 소설이 지문에 나왔다던 한 대학생 아이가 일어나서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 슬퍼져요,라고 했을 때였다. 어떤 계단에 저자며 제목이며 표지가 다 찢어진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 아, 이건 신경숙이 소설이구나, 생각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작가가 되었을 적부터 생각했다는 이야기. 거리감을 두기 위해 '너'라는 호칭을 썼는데, 읽는 이들이 모두 '나'로 바꿔서 읽는다는 이야기. (이건 정말 백번 천번 만번 동감) 백가흠 작가는 자신이 '엄마를 부탁해 효과'라 명명한 여운이 아주 오래가, 엄마 생각이 계속 나고,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에 오늘이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고, 특히 자신에게 그랬다고. 다음 이 말이 정말 좋았다. 이제 많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끝나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책이 있으니까요. 책으로 다음 번에 다시 만나요. 아.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다. 얼마 전에 엄마와 보름동안 동거를 한 적이 있었다고. 사춘기 이후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냈다고. 밤이면 엄마가 주무시나, 방을 들여다보면 늘 엄마는 주무시지 않고 계셨다고. 그러면 방으로 들어가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고. 주로 예전의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그러다 다퉈 등을 돌리고 씩씩대기도 했다고. 어느 날은 엄마가 작가님 품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고. 그러면 작가님은 아주 행복해졌다고. 그건 친구, 애인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행복감이었다고. 아주 완전한 행복을 느꼈던 순간이었다고. 이 이야기를 해주셨을 때, 좀 벅찼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그 완전한 행복의 느낌을.

       자꾸만 <작가의 방>에 소개된 작가님의 서재가 생각이 났다. 길고 넓은 나무 책상, 두껍고 튼튼한 책장, 그 속의 책들, 무릎을 껴안은 조각상,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던 창가까지. 이번 주말엔 남은 부분을 다 읽어야지. <감자 먹는 사람들>을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사인 받을 때 두 권을 내밀었다. <엄마를 부탁해>는 사인본이었는데, 사인이 되어있던 것 위에 내 이름을 예쁘게 적어주셨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도 똑같은 사인을 받았다. 꿈을 이루세요.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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