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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 미셸 공드리와 봉준호 감독 영화
    극장에가다 2008. 10. 25. 18:22

    (스포일러 있어요)


       타닥타닥. 지금 서울에는 비가 내린다. 당신이 있는 곳에도 비가 내리는지. 오늘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토요일이고, 약속도 없으니, 집에서 비 내리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즐겁다. 이번 주에 봤던 영화 <도쿄!>에서도 비가 내렸다. 타닥타닥. 고백하자면, 이 날은 너무 피곤해서 영화를 보다가 좀 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레오 까락스 감독 영화에서만 잤다. 그래서 <도쿄!>를 보긴 했는데, 제대로 다 본 건 아니다. 

       제일 좋았던 건 미셸 공드리 단편. 내가 좋아하는 미셸 공드리는 찰리 카우프만과 함께하는 미셸인데. 이번 영화를 보니, 그냥 미셸 공드리도 꽤 좋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곧 찰리 카우프만 감독 영화가 개봉한다고 하니, 그냥 찰리 카우프만은 어떤지 그 때 판단해봐야겠다. 봉준호 감독 인터뷰 기사를 보니 미셸 감독 영화는 여자친구 만화영화를 원작으로 한 거란다. 그러고 보니 만화적인 감각들이 있었다. 후반부에. 그러니까 이 영화는 '결국엔 의자가 되어버리는 여자 이야기'다. 그런데 '아주 행복한 의자가 되어버리는 여자 이야기'인 거다. 여자는 노랗고 튼튼한 의자가 되어서야 자신이 비로소 쓸모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고 만족한다. 

        여자에게는 아침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작지만 아늑한 자신의 집이 있는 친구가 있다. 꿈은 영화감독이요(그는 그 때도 아주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고 있었다. 사토시가 이대팔 가르마를 따고 잠깐 나온다. 신경질적인 남자로.) 따라가서 그냥 해본 포장 아르바이트에 떡하니 채용되어버리는 남자친구도 있다. 여자는 도쿄 하늘 아래 작지만 아늑한 자신만의 집을 가지고 싶고, 포장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라 그럴듯한 방도 구할 수 없고, 테스트에서 기괴한 고양이 장식 포장을 만들어 아르바이트에도 똑하니 떨어졌다. 심지어 차까지 견인 당한 상태. 돈이 없으니 차도 찾을 수 없다.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의자가 된다. 버스 정류장에 놓여져 있는 그 의자를, 골목 구석까지 따라온 그 여자를 한 남자가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아늑한 집이다. 아침이면 햇살이 들어오고, 커피도 빵, 신문이 있는 집. 음악이 흐르고 기타가 있는 집. 여자는 의자가 되어 그 집에서 지낸다. 목욕을 하고, 청소를 하고, 잡지를 오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편지를 쓰고.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는, 의자는 햇살을 가득 머금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햇살. 햇살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도 나온다. 히키고모리. 이것도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서 본 내용인데, <올드보이>를 본 씨네콰논 이봉우 대표가 일본에서는 저렇게 십년 넘게 집에서 군만두 먹고 집밖에 나오지 않는 히키고모리가 꽤 많다고, 그렇다고 뭐 복수까지 하나, 라는 소리를 했단다. 오대수는 히키고모리가 되고 싶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게 망치 들고 복수하겠다고 나선거지만, 봉준호 감독의 이번 영화에는 히키고모리가 되고 싶어서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고모리가 나온다. 가가와 데루유키라는 배우는 내게도 <유레루>에서 아주 인상깊었다. 눈이 아주 슬퍼보이는 배우다. 늘 촉촉하고.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연기를 잘하더라. 

       그래, 햇빛. 사람들이랑 짜증나게 닿는 것이 싫어 히키고모리가 된 사람. 햇빛때문에 땀을 흘리는 도시의 일상이 싫어 집 안 문을 잠가버린 사람이 가가와 데루유키다. 그는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 필요한 물건은 전화로 배달시켜 먹고, 생활한다. 서서 밥을 먹고, 문을 열어놓고 똥을 눈다. 배달원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지독한 정리벽이 있다. 벽에는 똑같은 물건들이 좌우, 상하로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런 히키고모리도 햇빛은 좋아한다. 그런 대사가 있었다. 나도 햇빛은 좋아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바닥에 따스하게 내려앉은 주황빛의 햇살을 가만히 잡았다. 가가와 데루유키의 손도 그 화면 속에 들어가 있었나? 히키고모리는 햇살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봉준호 감독 영화도 좋았다. 사람 하나 없는 도쿄 거리, 시시때때로 흔들리는 도쿄. 그래서 밖으로 나오게 되는 히키고모리들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가가와 데루유키의 정돈된 집에서는 그의 삶에 대한 애정이 그득하게 느껴진다. 히키고모리는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다. 더 행복해지기위해 아주 조그만 나만의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 작은 공간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서 좀더 넓은 공간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가 이 영화가 말하는 바가 아닐까. 결론은 나오라는 거다. 생각보다 그렇게 짜증나는 일만 가득한 건 아니니까. 살과 살이 부대끼면서 얻게되는 무언가도 있으니까. 그 땀도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달리면서 흘린 여름의 땀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시원하게 식어가는 그 느낌때문에 여름을 기다리는 거니까. 어쨌든 이 모든 결론은, 엉뚱하게도 아오이 유우는 예쁘다는 거다. 히키고모리를 한 순간 밖으로 끌어 낼 만큼. 아. 그 장면 참 좋다. 가가와 데루유키가 집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는 첫 번째 순간, 문 밖에 여름의 눈부신 햇살이 그득하고, 가가와 데루유키의 얼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그 순간.

    도쿄 노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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