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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는 그런 꿈을 꾸었다
    모퉁이다방 2008. 7. 16. 23:43
      어제는 그런 꿈을 꾸었다. 뺨과 뺨이 맞닿는 꿈. 팔과 팔이 맞닿는 꿈. 마주한 몸과 몸이 너무 따스해 이건 꿈이구나, 느꼈을 무렵 나는 꿈에서 깨어나려하고 있었다. 정말 이런 꿈을 마주하는 아침은 깨어나기가 싫어진다. 영영 꿈 속에서만 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종일 그 꿈을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꿈이란 건 붙잡고 싶다고 붙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당연하게도 그 꿈은 내 몸에서, 내 기억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나는 그 꿈의 따스했던 기운만 하루종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꿈 속에서 그 뺨은 내게 괜찮다고 했다. 꿈 속에서 그 팔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꿈 속에서 그 몸은 내게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뺨이, 그 팔이, 그 몸이 나를 위로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꿈이, 실체도 없는 그 꿈이 나를 위로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나를 위로해준 것이다.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괜찮을 거라고.

       오늘은 이런 노래를 들었다. 브라이트 아이스의 'First Day of My Life'과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 이 두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선선해진 밤바람을 맞으며 도서관에 갔다. 나는 8시 이후의 도서관을 좋아한다. 책들이 주인이 되는 시간. 막내동생의 대출카드를 가져가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를 빌렸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아 1시간 반동안 <모래의 여자>를 읽었다.

       주인공이 모래의 집을 탈출하고야 말겠다는 궁리를 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을 때 어떤 꿈을 꾼다. 피가 터져나오는 편지를 집어든 꿈이었다. 그 페이지를 읽다말고 어제 꾼 꿈 생각이 났다. 하루종일 잡아보려고 애썼던 나의 꿈. 잊을 수 없는, 잊지 못한 꿈은. 그래, 한 손 가득 움켜쥔 모래 같은 거다.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붙잡고 있어도 저절로 스르르 빠져나가 결국 손바닥엔 땀에 젖은 몇 되지 않는 모래알만 남는 것. 나는 그걸 잡으려고 메모를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꽉 다문 오전을 보내기도 하고, 너라면 이해할거라며 누군가를 붙잡고 10분이 넘게 그 꿈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입 밖으로는, 손 끝으로는 그 꿈의 느낌이 전해지지가 않았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손 끝으로 쓰려는 순간 그 따스했던 꿈은 스르르 사라지고 누구라도 지껄일 수 있는 유치하고 지루한 이야기로 남아 버리는 거다. 그러니 이렇게 그 꿈이 어떠니, 모래가 어떠니 주절주절 지금 쓰고 있는 것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시껄렁하다는 이야기다. 그냥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잡으려고 하는 꿈은 잔뜩 오므려 쥔 손 안의 모래같은 거라는 것. 스르르, 소리없이 새어나가 결국 몇 알의 젖은 모래자국만을 마주할 것이라는 것.

       그래도, 그래도,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적어놓고 나중에 다시 이 글을 보게 되면, 그 꿈 내용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꿈의 느낌은 기억하지 못해도, 이 때 내가 잊기 싫어했던 어떤 따스한 꿈을 꿨구나, 정도는 기억할 수 있겠지, 해서. 그래서. 요즘 나는 자판기에서 크림커피를 먹는다. 맛이 의외로 괜찮다. 달달하진 않지만. 나는 이제 너무 달달한 게 싫어져 버렸다. 도서관을 내려와 크림커피를 뽑아먹고 'First Day of My Life'와 'At Seventeen'을 들으며 비냄새 그득한 밤바람을 맞으면서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남은 캔맥주 하나를 땄다. 뭐랄까. 기분이 좋다.

       오늘은 내 반쪽같은 친구의 생일. 만나지도 못하고, 문자 하나뿐이였지만 내 마음이 그대에게 고스란히 날아갔길. 7호선을 타고 건대입구에서 갈아 타고 2호선을 탄 내 마음이 신천역에서 내려 김밥천국 골목길, 그대의 집까지 무사히 전해졌길. 지금 나는 혼자 캔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오늘 생일이었던 그대와 함께 건배하면서 마시고 있는 것이야. 생일 축하해, 친구. 짠. 원샷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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