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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네 살 - 나의 타임리프
    서재를쌓다 2008. 7. 7. 19:49
    열네 살 1
    다니구치 지로 지음/샘터사


       꽃이 지기 전 열네 살의 몸으로 돌아간 <열네 살>의 2권, 127페이지에는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제일 좋아한 그림이 있다. 48살에 일과 일상에 지친 중년의 남자가 어느 날 잘못 탄 기차를 타고 돌아간 열네 살이라는 역. 그 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 48살의 술과 스트레스에 찌든 지친 몸의 주인공 나카하라는 14살의 가볍고 젊고 부드러운 몸이 된다. 타임리프. 열넷의 몸은 어색하고,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젊은 모습도 낯설고, 어느 날 실종되어버린 아버지의 변함없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도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시간 이동. 그리고 127페이지. 어느새 열넷, 싱그런 자신의 몸에 익숙해진 나카하라가 한 여름의 바다에 뛰어들어 흥분한 몸을 식히고, 바다 위에 둥둥 몸을 띄워 자신에게 쏟아지는 햇볕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하는 생각. 예전의 내게는 이런 14세의 여름은 없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타임리프가 소재인 일본영화나 소설을 볼 때마다 항상 궁금했던 건 그렇다면 '현재'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가, 였다.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가 버리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되는가. 현재의 나는 현재에서 없어져 버리는가. 그럼 미래의 나도 없을 터. 과거의 나만 존재하게 되는 건가. 과거의 나도 현재가 될테고, 미래가 될텐데. 만약 현재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 나와 상관없이, 변함없는 현재를 살아나간다면 과거로부터 다가올 현재와 미래, 현재로부터 다가올 미래는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간 나도, 현재의 나도 주어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항없이 살아간다면 현재의 내가 우연히 미래의 나와 스쳐 지나가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를 아니, 또 다른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항상 그런 밑도 끝도 없는 물음이 계속되는 동안 영화와 소설은 끝나곤 했다. 모든 결론은 결국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현재로, 혹은 미래로. 과거로 다시 돌아간 기억을 가지고.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간 기억을 가지고 현재를, 미래를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슬플까. 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할테니깐.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가 느끼는 그리움이란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다행스럽게도 아름답지만, 그들의 그리움은 좀 다르지 않을까. 결국 타임리프의 영화나 소설은 모두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었으나, 그리하여 과거의 사건들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었으나, 큰 축은 바뀔 수 없다. 달라질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을 거스를 순 없다.

       열네 살로 돌아간 나카하라. 나카하라의 열네 살은 좀 특별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었지만, 어느날 바람처럼 아버지가 사라졌다. 실종되었다. 그리고 48살이 된 현재까지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카하라는 그 시절로 타임리프된 것이다. 아버지가 실종되던 해. 그걸 막아야 하는 해. 나카하라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48살의 나이에 14살의 과거로 돌아가 14살의 몸을 하고 48살의 자신을 되돌아본다. 14살의 몸으로 14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과, 14살의 몸을 하고 48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일. 그건 분명 다른 일이다. 48살에 보는 젊은 어머니, 아버지. 그건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는 점술가들이 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은 아니다. 슬프고, 그립고, 후회스럽고, 미안한. 그래서 아쉽고, 서글프고, 눈물나는 그런 종류의 일이다.

       결국 열네 살로 돌아간 나카하라는 바람처럼 사라진 아버지를 잡을 수 있었나. 그리하여 다시 돌아온 마흔 여덟의 나카하라의 삶은 달라졌나.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두 질문 중 하나만 그렇다,이다. <열네 살>을 보면서 내 열네 살을 생각했다. 기억력이 안 좋아 추억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그 시절로 나카하라가 아닌 나의 타임리프를 생각해봤다. 어느날 전철을 잘못 탔고, 내리려고 보니 그건 나의 열네 살 정거장이였다는 상상. 그 시절, 내가 막아야 했던 건 무엇이였나. 결국 막을 수 없겠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막아보고 싶은 그것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집엔 아주 오래된 검고 큰 플레이어가 있다. 테이프도 되고, 라디오도 되고, 씨디도 재생되는 플레이어다. 처음 이 플레이어를 샀을 때는 씨디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여서 주로 여기에 테이프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김수희 테이프도, 내가 들었던 오성식 아저씨의 팝스잉글리쉬 테이프도, 동생과 내가 열광했던 서태지 테이프도 모두 이 플레이어에서 재생되었다. 나는 잘 기억나질 않는데, 동생은 이 커다란 플레이어를 아빠가 사들고 왔던 그날 밤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아빠가 이 무거운 걸 한쪽 어깨에 떡하니 올린채 집에 돌아왔던, 우리 세 자매가 좋아서 방방 뛰던 그날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한다. 씨디 플레이어는 진작에 망가져 버렸고, 안테나도 부러져 98.1 쿨 FM밖에 들리지 않고, 테이프 따위는 아무도 듣지 않지만 테이프만이 온전히 재생되는 이 고물 플레이어를 버리지 못하고 서울까지 들고와서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는 이유는 그 날 밤에 있다. 여기에 나의 열네 살, 동생의 열한 살과 젊은 아빠가 있고, 젊은 엄마가 있다.

       내게 꼭 한번 타임리프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안다. 결론은. 시간은 결코 거스를수 없다는 걸. 그 시절로 돌아간 나는 후회스러운 과거 중 어떤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현재로 돌아오겠지만, 그래서 나카하라처럼 돌아가 너는 나중에 소설가가 될거야, 너는 나중에 해외에 나가 살게 될거야, 식의 현재의 시간들을 내뱉지 못하고 꿀꺽꿀꺽 삼키기만 하겠지만, 그 시절엔 수줍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 못했던 소소한 말들을 남기고 오고 싶다. 지금은 없는 내 소중한 이들에게. 놀러오지 않는 손녀들이 보고싶어 우리집에 오신 외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할아버지 술 많이 잡수시지 마세요. 그러면 나중에 많이 아파요, 라고. 맑은 옥소리,라고 내 이름을 예쁘게 지어주신 할아버지의 마산 합정동 집 마루에 누워선, 할아버지 나는 이 집이 제일 좋아요. 이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 안 갔으면 좋겠어요, 식의 말들을. 젊고 아름다운 엄마에게는 편지에 쓰기만 했지 한번도 입밖으로 내뱉지는 않은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할 테고, 젊고 건강한 아빠와는 내가 생각하고, 꿈꾸고, 바라는 것들을 더 많이, 더 오래 이야기할 거다. 종달새처럼. 그리고 아빠가 싫어했던 심은하, 서태지와 아이들 브로마이드를 떼내고 그렇게 노래부르셨던 가족사진을 벽에 예쁘게 붙여 놓을테다.

       그런 '시간을 거스르는 흐름과는 아무 상관없는'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을 마음에 가득 담고 현재로 돌아와선 지금의 그들에게 더 잘해줘야지. 그러고보니 난 벌써 타임리프를 한 셈이네. 그러네. 이제 더 잘하는 일만 남았구나. 우리가 그 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야기하며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그리워하는 일만 남았네. 그렇네.



       덧, 곡예사님, 고마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곡예사님이 내게 선물한 타임리프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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