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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간섭 아저씨가 우리에게 한 말
    모퉁이다방 2008. 7. 6. 17:32
    - 얼마 전까진 분명 '우리의' 간섭이네였던 곳.

    동네에 우리가 간섭이네,라고 부르는 고깃집이 있다. 츄리닝에 슬리퍼 질질 끌고 가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맥주 한 병 하면 기분 좋아지는 곳. 안에도 자리가 있지만, 간섭이네에선 꼭 밖에서, 그것도 찻길 바로 옆에서 272버스가 지나가는 바로 옆에서, 먹고 싶어 죽겠지 메롱메롱 포즈로 상추 위에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에 마늘이랑 파조리개 얹어 입을 쩍-하니 벌리고 세상에서 제일 맛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먹어줘야 제 맛이다. 바람이 솔솔 불고, 배도 슬슬 불러오고, 취기도 약간 알딸딸하게 돌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은 없지만 변함없는 밤하늘이 있는, 자박거리면 5분만에 집에 갈 수 있는 곳. 정말 얼마 전까지 그 곳은 분명 '우리의' 간섭이네였다.

    흠. 정말 정직하게 나는 그 집 삼겹살이 제일 맛났다. 간섭 아저씨는 기억 못하는 듯했지만, 우리도 분명 그 곳에서 1인분에 만원 가까운 소갈비살과 우겹살을 시킨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렇지만 간섭이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건 정말 삼겹살, 양도 작고, 꽁꽁 언 냉동삼겹살이었다. 얼마 전 이제 '우리의' 간섭이네가 아니라 '그따위' 간섭이네가 된 사건이 있었으니, 모든 것은 우리가 그 맛난 삼겹살'만' 시켜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집을 우리가 간섭이네,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집 주인아저씨가 어찌나 간섭이 심한지 처음에는 그 아저씨 간섭때문에 한동안 발길을 끊었을 정도였다. 초창기 아저씨는 도무지 우리가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올리는 꼴을 못 봤다. 그렇게 하면 안돼요, 하면서 (그건 분명 '친절'이 아니었다) 불판에 고기를 올리는 규칙을(아니, 철칙을) 매번 갈 때마다 우리에게 가르쳐줬는데 이런 식이다.

    하나, 불판 위에는 절대 두 덩이의 고기만 올린다. 세 덩이는 잘 안 익는다. 한 덩이는 연기 난다.
    둘, 김치나 버섯은 꼭 고기의 기름이 줄줄 내려오는 두 곳에만 올린다. 가장자리라고 다 같지 않다.
    셋, 테이블이 좁으니 고기와 물통은 꼭 의자 위에 둔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두 덩이든 세 덩이든 사실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빨리, 많이 먹고 싶은 마음에 간섭이네의 철칙따위 까맣게 잊어버리고 세 덩이를 떡하니 올려놓기도 하고, 고기의 방향을 불판의 구멍과 같은 방향으로 자주 올려놓곤 했다. 그러면 간섭 아저씨는 달려와선 아이참, 그렇게 말해도 아직도 모르네, 몇 번을 말해야 하겠어, 라며 짜증을 내시는 거다. 아, 그래. 우리의 간섭이네니, 우리는 금세 깜빡깜빡하는 돌대가리들이니 참았다. 정작 친절하지 못한 나는 무척이나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아저씨가 우리를 '무척'이나 편하게 생각하시는구나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간섭 아저씨의 첫 인사 뉘앙스가 바뀌었다는 걸 완전히 눈치챘을 즈음(처음엔 '어서 와요'였다. 다음엔 '오셨어?', 그리고 이젠 '삼겹살?'이다)의 일. 그 날 돈이 많았던 우리의 물주께서 간섭이네에 소갈비살에 맥주 먹으러 가자고 말한 그 날의 일이다.

    1인분에 만원 가까이 하는 소갈비살을 먹으러 갔다. 요즘 간섭이네는 장사가 잘 돼서 지나가다 봐도 항상 밖의 자리가 꽤 차 있을 때가 많다. 그 날은 밖에 앉을 자리가 한 자리도 없었다. 간섭이네에선 밖에서 먹어야 제 맛인데, 어쩌나, 입맛을 다지면서 서성이고 있는데 아저씨가 밖에 서 있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더니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왔냐고, 밖에 자리 없으니 들어오라고 친절하게 문을 열고 맞이해줄줄 알았던 우리) 안에 들어가서 밖에 자리 없어요, 물었더니 그냥 없다고만 한다. 기분이 조금 나빴지만 그 날은 고기를 먹고 싶다기보다 정말 간섭이네를 가고 싶은 것이었기에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들어갔다. 소갈비살과 우겹살을 시켰다. 아주머니께서 서빙을 해 주셨는데, 나중에 역시나 간섭 아저씨가 오시더니 고기를 쓱 올려주신다. 소갈비살을 한꺼번에 아주 많이. (그건 우리 물주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다) 뭐 어쨌거나 삼겹살에는 많은 규칙이 필요하지만 소갈비살과 우겹살은 별다른 규칙이 없다. 그저 적당히 익혀 질겨지기 전에 빨리 먹는 것 뿐. 두 번째로 우리 고기를 올려주러 온 간섭 아저씨는 이런 말을 했다.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소갈비살 먹으니깐 맛있지?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아, 그런 거였다. 순간 우리 모두 표정이 일그러졌다. 삼겹살은 늘 두 덩이만 올리라더니, 소갈비살을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이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소갈비살을 시키니 삼겹살 먹을 때는 없던 샐러드가 올라왔다.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맨날 삼겹살만 먹다가. 맥주를 꿀꺽꿀꺽 원샷했다. 맨날 삼겹살만 먹는 우리들은 왜 그동안 아저씨가 어서 와요, 인사가 오셨어, 에서 삼겹살, 로 바뀌었는지. 왜 아저씨 마음에 들지 않게 올린 각도의 삼겹살 덩어리를 보고 달려와 짜증을 냈는지, 오늘도 맨날 먹는 삼겹살 먹을 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삼겹살, 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그러니까 간섭이네에서 맨날 삼겹살만 먹는 우리들은 2차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포장마차에 가 꼬막을 까 먹으며 간섭 아저씨 욕을 했다. 맨날 삼겹살만? 소갈비살을 그렇게 한꺼번에 무식하게 많이 올리는 사람이 어딨어? 나는 아저씨의 오셨어, 라는 무시하는 듯한 그 미묘한 억양의 흉내를 아주 잘 낸다. 오셨어? 삼겹살? 그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간섭이네에 가지 말자고 합의를 봤다.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삼겹살 먹어야 되겠어? 그래봐야 냉동 삼겹살이잖아. 허참, 맨날 삼겹살만?

    그리고 일주일쯤 지나자 다시 간섭이네 삼겹살 생각이 났다. 다시 모인 우리는 간섭이네 이야길 하면서 우리가 그 날 너무 예민했던 건 아닐까 생각했다. 맨날 삼겹살만 먹은 건 사실이잖아. 그렇게 나쁜 뜻으로 이야기 한 건 아닐거야. 그래도 저번에 우리한테 숯불하다 손 데였다고 친한 척 했잖아. 조만간 다시 갈 지도 모르겠다. 맨날 삼겹살만 먹는 우리들, 어김없이 삼겹살 먹으러. 이번에는 삼겹살이며 김치의 각도며 위치를 아주 제대로 올려 지적 한 번도 당하지 않으면서.

    아, 이렇게 주절주절 길게 적으니 너무 찌질이같다. ㅠ


           
    - 알라딘 중고샵에서 김연수의 <스무살>을 주문했는데, 살 빼는 기계가 왔다. 분명 보낸 사람 이름이랑 송장번호가 맞는데, 그 안에 책은 커녕 벨트를 연결해서 작동시키면 진동으로 인해 살이 빠지는 듯한 기계 부품들만 나왔다. 이게 무슨 뜻인가. 니 뱃살을 보고도 한가롭게 책 읽을 기분이 나시오, 뜻인가. 정말 한참을 생각했다. 판매자에게 문자를 보내니 아직 책을 보내지도 않았다며,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니, 내가 처음에 배에 부착하는 기계,라고 한 표현을 정정해 뱃살 빼는 기계,라고 하니 아, 그건 엄마가 반품한 건데, 라며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결국 뱃살 빼는 기계 왕복 배송료를 부담하게 된 판매자는 또 책을 보내게 되면서 부담하게 될 배송료 때문에 <스무살> 주문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알라딘 고객센터와 전화를 하는데, 다른 책이 온 건가요, 라는 질문에, 아 책이 온 게 아니구요. 완전히 다른 제품이 왔어요. 다른 제품이요? 네, 아, 그게. 살 빼는 기계가 왔거든요. 더듬거리면서 이야길 했는데도 그쪽에선 잘 못 알아듣는 눈치다. 다행하지. 책을 주문했는데 책이 바뀐 것도 아니고 살 빼는 기계라니.

    아, 파스텔의 스무살을 가지게 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쨌거나 뱃살을 빼고 팔뚝살도 빼고 허벅지살도 빼서 그리 날씬하진 않았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날씬했던 스무살의 몸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연수 작가님은 내게 참 많은 것을 일깨워 주시지. 그러니까 그런 몸. 잠이 오지 않는 오늘 새벽, 뒤척이다 다니구치 지로의 <열 네 살>을 보면서 발견한 문장. 48살의 주인공이 14살로 돌아가 뜀틀을 가뿐하게 뛰면서 생각했던 열 넷의 몸에 관한 문장. 왜 이렇게 가벼운가. 나는 젊고 부드러운 몸에 감동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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