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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십리 불곱창과 조폭 아저씨네 포장마차
    모퉁이다방 2008. 5. 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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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십리도 아니면서 우리 동네에는 왕십리 불곱창집이 있다. 왕십리 불곱창집의 간판은 노란색 바탕인데 '불곱창'의 '불'자는 그야말로 불에 타고 있다. 이 집에서 우리는 곱창은 딱 한번 먹었고, 막창을 꽤 여러번 먹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어제 먹고도 오늘 또 생각날 정도다. 막창의 비린 맛도 하나도 안 나고, 양념도 소금구이도 둘 다 맛있다. 돈이 좀 있는 날은 맥주에 소주를 섞어서 마시고, 돈이 좀 없는 날은 그냥 소주만 마신다. 날씨가 좀 쌀쌀한 날에는 안에 들어가 먹고,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에는 밖에 나와 먹는다.  





       작년 내 생일에 동생이랑 동생 남자친구랑 셋이서 1차를 하고 2차로 포장마차를 갔다. 우리는 그 포장마차를 가자고 할 때 꼭 조폭 아저씨네 해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조폭 아저씨네 포장마차는 불타는 곱창집에서 2분 거리의 도로 옆 인도에 있다. 파란색 트럭에 해삼, 오징어, 산낙지라고 씌여진 현수막이 둘러져 있고, 그만한 수족관에 그 날의 해삼과 오징어와 산낙지가 있다. 여기는 산낙지가 맛있지만 없을 때도 있고 양도 작아서, 우리는 주로 여기선 해삼을 먹는다. 그 주인 아저씨가 조폭인 건 아저씨와 다른 아저씨가 이야길 나누는 걸 보고 알아차렸다. 그래서 여기서 우린 최대한 공손하게 주문을 하고, 야채를 가져다줘도, 소주를 가져다줘도 최대한 상냥하고 발랄하게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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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내 생일에 동생이랑 동생 남자친구랑 셋이서 2차로 이 조폭 아저씨 포장마차엘 갔는데, 거기서 케잌에 촛불을 붙였다. 불을 끄고 케잌을 먹으려는데 왠지 셋이서는 다 못 먹을 것 같아서는 아니고 사실 조폭 아저씨에게 조금이라도 상냥하고 발랄한 손님으로 남고 싶은 비굴한 마음에 생크림 케잌을 반을 잘라 드렸다. 아저씨는 조폭 아저씨답게 무뚝뚝하게 한번 고맙다고 했다. 혹시나 산낙지라도 조금 줄까, 해삼이라도 조금 더 챙겨주지 않을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생크림 케잌은 좋아하지 않는 건지, 조폭에겐 서비스따위는 없는건지 국물도 없었다. 그런 사소한 케잌따위로 조폭 아저씨의 서비스를 받아 먹으려고 하다니 어리석다며 자책하며 씁쓸한 마음으로 마지막 소주 잔을 비우고 일어서서 계산을 하는데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사실은 내가 아까 꽃을 하나 사서 주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미안해요. 이거라도 가져가요. 생일 축하해요.

       그러면서 건넨 만원짜리 지폐 한 장. 조폭 아저씨가 내 생일이라고 만원을 줬다. 아싸. 나는 이보다 더 상냥하고 발랄할 수 없는 목소리로 고맙다고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동생은 뒤에서 손까지 흔들며 또 올게요, 나보다 더 발랄하게 소리쳤다. 동생 남자친구는 고개를 60도 정도 숙이며 안녕히 계세요, 라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술에 취한 우리는 미친 엑스들처럼 길을 건너면서 기뻐했다. 하하하. 사실 꽃보다 돈이 더 낫지. 하하하. 내 평생, 니 평생 조폭 아저씨한테 만원짜리 생일선물을 받다니.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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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1년을 안 갔다. 안 가기도 했고, 못 가기도 했지. 초가을이 지나고 너무 추워서 조폭 아저씨네 포장마차는 임시휴업에 들어갔으니까. 그러니까 왕십리가 아니면서 왕십리인 불타는 곱창집에서 막창을 먹은 우리는 기분이 좋아서 조폭 아저씨네 포장마차에 1년만에 갔다.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썰렁한 파라솔 하나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서빙하는 아저씨가 그 조폭 아저씨가 아니다. 그래서 그 조폭 아저씨가 아니네요, (물론 조폭, 이라는 단어를 썼을리가 없다.) 했더니 아, 마빡이요? 한다. 그 조폭 아저씨의 별명이 마빡이구나. 마빡이랑 나랑 동업하는 건데 그 자식, 내 사돈이예요. 그러면서 마빡이 아저씨와 동업하는 아저씨는 묻지도 않은 대답까지 막 해준다. 그런데 이 마빡이 아저씨 사돈인 아저씨는 이게 만원?, 인 적은 양의 해삼을 가져다 주곤 야채도 주지도 않고, 음료수 서비스도 주지 않고 서빙을 마쳤다. 우리는 소심하게 해삼을 집어먹고, 소주를 마시며 해삼을 듬뿍 담아 주던 마빡이 아저씨가 그립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주 한 병을 더 달라고 할 때도 주문하지 않고 직접 가서 가져왔다. 최대한 상냥하고 발랄한 표정으로. 왜냐면 그 아저씨도 조폭이 분명한 거 같았거든.

       뭐 어쨌든 그 날은 술도 맛나고 막창도, 해삼도 맛있었다. 다음에 조폭 아저씨네 포장마차에 갈 때는 꼭 마빡이 아저씨인지, 마빡이 아저씨 사돈 아저씨인지 멀리서 살펴보고 가야지. 아, 술 마시기에 좋은 계절이 다가 오는구나. 지화자. 그나저나 막창은 이제 마음놓고 먹지도 못하겠구나.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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