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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댄 인 러브 - 놓치지 말아요, 이런 뻔한 영화
    극장에가다 2008. 4. 17. 03:04


    디어 댄.

       참 신기한 일이예요. 당신의 부지런한 칼럼은 뻔했거든요. 거기다가 우연투성에다가. 당신은 사랑에 빠져 허우덕대면서 다른 사람 사랑은 사랑축에도 못 든다며 대놓고 어린 아이처럼 심통부리고.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당신의 칼럼을 다 읽곤 기분이 꽤 괜찮아지는 거예요. 사실 좀 많이 웃었어요. 약간 울기도 했어요. 흠. 사실은 많이 행복해지는 느낌이였어요. 참 이상해요. 모두 뻔한 장면들이였는데, 그 장면들을 보면서 웃고 울고 있는 거예요. 내가요. 흠. 이런 말 뻔하긴 하지만요. 사랑이며 로맨틱 코미디며 죄다 뻔하지만 할 때마다, 볼 때마다 참 행복해져요.

        뭐. 뻔한 이야기 조금 더 해 볼까요? 좋았던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요. 부모님 집에서 지내는 동안 비가 자주 왔잖아요. 와락 쏟아진 건 볼링장 사건이 있었던 그 날뿐이었지만, 당신이 처음 마리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서점에 가던 날 아침에도 당신의 차 창문에는 비가 내린 흔적이 맺혀있었어요. 밤새 가을비가 소복히 내려주셨던 흔적이요. 나는요. 비가 올 때도 좋은데, 비가 내리고 난 후도 좋아요. 촉촉히 맺혀있는 창가의 흔적도 좋구요. 더러운 것들을 다 쓸어내린 공기의 색감도 좋아요. 모든 게 100미터 당겨진 듯한 청명함도 좋아요. 당신이 차를 타고 이동하려는 순간마다 그 창가의 흔적을 발견하곤 기분이 계속 좋아지고 있었어요. 진짜 비 냄새가 나는 것 같았거든요. 요즘 어떤 극장엔 냄새로 현장감을 살려주는 시스템이 있다면서요. 그럼 나는 당신의 영화에선 내내 비 냄새가 촉촉히 뿌려줬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흠. 그리고 뭐가 뻔하게 좋았더라? 아, 마리랑 처음 만난 그 서점이요. 앙상한 나무 책장으로 가득차 있던 그 서점,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 책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구요. 책이 꽂혀있는 모양도 마음에 들었어요. 조금 무성의한 서점주인도 마음에 들었어요. 당신은 서점 직원이 아니라면서 냉큼 그 많은 책을 계산대로 가져가는 민첩성이라니. 그 카페는 서점과 연결되어 있는 거 맞죠? 저런 서점 있음 정말 좋겠다, 싶었어요. 바다도 보이고, 산책도 할 수 있고, 책도 많고,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캬. 그리고 볼링장이요. 센스있는 할머니의 나이트쇼. 난 볼링의 ㅂ자도 몰라서요. 영화 속에서만 그런게 아니라 진짜 그런 볼링장이 있는 거예요? 조명 죽여주고, 음악 죽여주는? 그런 볼링장이 있다면 그리로 출퇴근할래요.

       뭐 뻔하지만 그런거죠. 당신은 딸이 주장하는 3일만에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는 사랑이 있나없나 확인하기 위해 마리랑 사랑에 빠진 거예요. 3일만에. 아주 푸욱. 딸 사랑이 지극한 사람이니까요. 결국 첫눈에 반하고 3일만에 사랑임을 확신하게 되는, 그 상대가 동생의 여자친구여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강렬한 사랑이 나타나주셨으니 딸도 이해하고 독수공방도 끝나고 일거양득이네요. 당신. 역시 선수였어. 브라보.

       아. 당신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중랑천을 걷는데요. 당신네 가족들이 아침운동으로 했던 고런 비슷한 체조를 아주머니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하시고 계신 거예요. 왼쪽 팔을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펼치고 오른손으로 왼쪽손 끝에서부터 겨드랑이 쪽으로 리듬에 맞춰 톡톡톡 두드려주는 거예요. 엉덩이는 비트에 맞춰 제대로 흔들어주구요. 음악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예요. 아, 우리 아주머님들 진정한 고수 아닙니까? 그러니 댄, 조심해요. 님에 점 하나면 뚝딱 남이 되는 연애를 당신 시작한 거니까요. 부디 '댄 인 러브'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빌어요. 뭐 점 하나 금방 찍어도 절망하진 말아요. 원래 사랑이란 그런 거잖아요.

        아, 음악도 좋았어요. 3일간 꾸준히 들어줄게요. 그럼 안녕, 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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