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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토니아스 라인 - 네덜란드에서 불어온 따스한 한 줄기의 바람
    극장에가다 2008. 3. 23. 11:40

       10년 전쯤에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어쩌면 그 곳에서 이 유토피아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동성간의 결혼이 인정되는 풍차가 돌아가는 곳. 마약과 매춘이 합법적인 튤립이 만연한 곳. 언젠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봤다. 당장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글이였다. 마침 저렴한 가격에 DVD가 판매중이였고, 바로 주문했다. <4월이야기>처럼 언젠가 보게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책장 안에 고이 묻혀둔 이야기. 바다를 건너 온 풍차의 바람을 따스했다. 영화 속에 풍차는 배경으로도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따스하고 서늘한 바람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이건 당당하고 아름다웠던 안토니아에 관한 이야기다.

       첫 장면에서 안토니아는 자신의 죽음과 마주한다. 그녀는 안다.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변함없이 아침을 맞이하고 머리를 빗고 창문을 열지만 오늘이 바로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걸 그녀는 안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야기들. 순식간에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안토니아는 변한다. 추억은 그렇게 순식간에 실현된다. 그녀는 당당하고 아름답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고 그것에 맞게 행동한다. 어머니의 마지막 날, 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안토니아. 나는 왠지 그녀가 <바그다드 카페>의 자스민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웃는 모습이 눈이 부시게 사랑스럽다.

       그녀는 살아간다. 그녀의 생에 커다란 반전은 없다. 그저 다가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딸의 선택도, 손녀의 선택도, 자신의 선택도, 그 어떤 누군가의 선택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너와 나는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란다. 그렇게 그녀는 늙어가고 그녀의 집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사랑이 가득찬다.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간다. 때론 도저히 뚫지 못할 내 안에 평생을 갇혀 사는 이도 있다. 결국 그는 자살을 선택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이와 정신적인 소통의 유일한 통로였던 안토니아의 손녀는 통곡하며 그를 보냈다.

       이 영화의 장점은 그것이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가 골방에서 목을 매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 나는 더이상 생각하고자 하지 않는다. 안토니아의 손녀로 인해 점점 세상밖으로 나오는 듯했던 그가 결국엔 늘 책상 위에 복잡하게 쌓여있던 철학서적들을 치우고 선택한 자살. 아빠없이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딸. 가진 아이를 낳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손녀. 결혼하지 않고 가족의 형태를 이어나가는 안토니아 자신까지. 풀이 그렇게 생기고, 나무가 그렇게 생긴 것처럼 모두가 모두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강요하지 않고 존중해나가는 힘이 이 영화 속에 있다.

       너무나 부러웠던 장면은 안토니아의 집에 사는 많은 가족들이 정원의 탁자에 빙 둘러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며 깔깔대는 뒷모습이였다. 나는 저들 사이에 끼였으면. 저들이 먹는 고기를, 와인을 나도 얻어 먹을 수 있었으면. 저들 사이에 끼이면 내 뒷모습도 저렇게 평온해보일까 하는 생각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는 그 식탁의 뒷모습은 정말 따스했다. 포근했고.

       <안토니아스 라인>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꿈꾸는 삶이다. 씨를 뿌리면 탐스러운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내게 안토니아의 가족들은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네덜란드 풍차 바람처럼 생경하고 그래서 더욱 따스한 것이였다. 강추다. 따스하고 재밌다. 크룩 핑거는 생각을 멈췄지만 영화를 보고 난 여러 날 뒤에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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