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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이야기 - 친구에게
    극장에가다 2008. 3. 19. 16:33


       이렇게 봄이 찾아와 주셨으니 <4월이야기>를 봐줘야 한다.  작년 인터넷 서점에서 <4월이야기> DVD를 발견하고는 당장 주문했다. 그리고 책장 안에 고이 꽂아두고는 봄이 오기만 기다렸다.

       대학교 1학년 즈음이였던 것 같다. 집에 내려가 있던 여름방학, 우리집은 우즈키를 닮은 내 친구의 동네로 옮겨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여름 밤에 자주 만났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금방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우리가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와 나는 자주 복도 창 밖에 고개를 내밀고 수다를 떨었다. 저녁시간에 훌쩍 여럿이서 야자를 빼먹고 학교에서 가까운 노래방에 놀러 가곤 했다. 노래방 언니는 늘 요구르트 하나씩을 줬었다. 의자 위에서 몸을 떨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 학교로 걸어오는 길에 방금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반짝거렸다. 교실로 잠입하는 시간은 늘 쉬는 시간. 신발을 손에 쥐고 사뿐사뿐 복도를 걸었다. 남은 야자시간에 공부가 될 일이 없었다. 라디오를 자주 들었고 서로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그림을 주고받았다. 스티커 사진을 자주 찍었고, 구름 다리 건너기 직전에 있는 자판기 냉커피를 하루에 두, 세 잔씩 뽑아 먹었다. 정말 그 커피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방학 때마다 만나게 된 우리는 자주 그 날의 일을 추억했다. 어느 날 친구는 동네에 멋진 곳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높은 곳에 대학교가 있었다. 헥헥거리며 올라가 보니 시내의 불빛들이 발 밑 아래 가득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캔맥주를 마셨다. 모기가 몰려다니며 우리를 공격했지만 이 정도면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에게 니가 나한테 페이퍼를 소개해줬었다고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뜨금없이 말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우리는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뛰어서 동네 비디오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뽑아들었나, 내가 뽑아들었나. 그 날 우리가 본 건 <4월이야기>였다.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화사한 봄의 화면을 봤다. 영화 속 우즈키는 지독하게 말이 없었다. 비디오 방을 나서며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버리다니, 나는 주인공이 벙어린줄 알았다고 투덜거렸다. 친구는 그냥 씨익 웃었다. 


       그리고 한 번쯤 더 보았었나. 두 번째 보았을 때 나는 친구가 우즈키와 많이 닮았다고. 생김새도, 행동들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쯤이겠다. <4월이야기>를 봤다. 아, 이 영화가 이렇게 웃겼었나. 이삿짐을 나르고 정리하는 장면에서 정말 혼자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좋아하던 벚꽃장면이 나왔다. 우즈키가 작은 나무의자를 들고 옷을 스르르 털어내면 벚꽃이 우르르 떨어지는 모습. 아, 이렇게 금방 지나가버리다니. 나는 이 장면을 분명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했는데. 5초도 되지 않아 우즈키는 새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플라잉 낚시를 하는 장면. 이 장면의 풍경은 너무 따스해서 스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다.

       그 시절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었던 스무살, 나는 왜 이 영화가 답답하게 느껴졌을까. 벙어리라고 생각했던 우즈키는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혼자 지내고 있어 쓸데없는 말이 없었을 뿐, 할 말을 예쁘게 하는 아이였다. 오히려 내 기억에서보다 무척이나 적극적인 아이였다. 이사한 날 이웃들에게 선물을 돌리고, 카레를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같이 먹자고 청하고, 좋아하는 선배때문에 아무도 없는 도시에 진학을 하고, 매일 선배가 일하는 서점을 찾아가 염탐하는 적극적이고 밝은 아이였다. 영화가 계속되는 동안 그 애의 머리 위에는 봄 햇살이 가득 뿌려져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아름다웠다. 그 아이가 살고 있는 그 시간들이. 싱그럽고 눈부셨다. 그리고 그리웠다. 마음이 아릴 정도로.

       역시 짧았다.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역시 아쉬웠지만 부족하진 않았다. 원래 봄은 짧으니까. 우리의 스무살은 그렇게 아쉬운 거니까. 넘치듯 부족한 계절이니까.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리는 시절이니까. 영화가 끝나고 Special Features 메뉴로 넘어갔다. 뒤적거리다 Shoot Picture를 눌렀다. 거기에 눈부신 우즈키가 있었다. 마츠 다카코가 슬레이트를 들고서 큐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 우산을 들고서, 비에 흠뻑 젖어서, 밥을 먹으면서, 화사하게 웃으면서. 너무 예뻤다. 우리들의 스무살도 저랬을까. 예쁘고 빛나고 부러웠을까.

       작년에 DVD를 사면서 친구에게도 따로 보냈는데, 친구는 봤을까. 영화 속에서처럼 애태우던 우리의 스무살 짝사랑을. 그때 우리가 늦게까지 밤을 지새우며 짝사랑했던 것은 어떤 남자아이였지만, 지금 나의 짝사랑은 우리의 스무살이 되어버린 걸. 오랜만에 메일을 써야겠다. 손편지가 좋을까. 지금 봐도 친구와 우즈키는 닮았다. 말이 그리 많진 않지만 할 말을 예쁘게 하는 아이. 밝고 적극적인 아이. 앞에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가 잘 어울리는 아이. 내가 보장하건데 니 스무살은 우즈카처럼 빛났었어. 물론 지금의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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