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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꿈을 되살려 줄 안주, 열빙어 구이
    모퉁이다방 2008. 1. 20. 23:10
       연말에 친구에게서 온 문자 한 통. 오래간만에 <슬로우 댄스>를 꺼내서 보고 있다는. 여전히 좋다는. 친구의 문자를 받고 저도 오래간만에 <슬로우 댄스>를 꺼내서 다시 봤어요. 재작년 여름에 한창 이 드라마에 빠져 있었어요. 매 회마다 저렇게 건배를 외치면서 술을 마셔대는데 어찌나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는지 몰라요. 대낮이였는데도 당장 친구들을 불러모아 동네 조그만 술집에서 한 잔 땡기고 싶어서 혼났어요. 대신 친구에게 이 드라마 참 좋다, 우리 조만간 술 마시자고 문자를 보냈던 것 같아요. 연말 친구의 문자처럼요. 


       <슬로우 댄스>는 꿈에 대한 이야기예요. 서른이 넘고 점점 하고 싶은 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사람, 꿈을 포기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늘 그 꿈을 잊지 않은 사람, 사시에 붙는 날 만나 결혼을 약속하자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정작 그 날이 두려운 사람,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바를 운영하는 오래된 꿈을 이룬 사람.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어요. 우리,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빛내자고. 그래서 이 드라마 끝에는 반짝반짝 현재를 빛내는 사람들만이 남았죠. 비록 지금 당장은 그 현재가 비루하더라도요.

       드라마에 같은 동네에 주인공들이 살아요. 그래서 그리 크지 않지만 친절한 주인 아저씨가 있어 늘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술집이 매 회 등장해요. 이 술집에서 때로는 혼자 간단히 마시려고 들렀다가 둘이 만나 흥건하게 취하기도 하고, 때로는 퇴근 길에 셋이서 반주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여럿이서 어울려서 끝도 없이 알딸딸하게 취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어떤 이는 잊고 있던 꿈을 이야기 하고, 어떤 이는 그 꿈을 응원해주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자신의 꿈도 찾게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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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다운 술집. 취할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배부르지 않는 그런 안주. 열빙어를 주문했어요. 일어로는 시샤모라고. 주로 술집에서 시샤모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술집에서 이 조그만 생선이 어찌나 비싼지 바짝 구운 요 녀석 여섯마리에 오천원을 받아요. 그래서 늘 감칠맛나게 아껴 먹었는데. 인터마크 마트에서 싼 가격에 열빙어 25마리를 구입했어요.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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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열빙어의 비린맛을 없애기 위해서 소주에 담겨서 해동을 시킵니다. 찍어먹을 간장 소스에 와사비 약간 넣고 레몬도 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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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집에 오븐이 없어서 버너를 가져다 팬 위에 구웠어요. 그런데 시샤모는 오븐에 굽는 게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제가 원하는 바삭바삭한 스타일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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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바짝 구우려고 하다가 이렇게 좀 태워버렸지만 맛있었습니다. 알이 꽉 찼어요. <슬로우 댄스>의 그들처럼 우리도 꿈을 찾아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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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알이라면 사죽을 못 쓰거든요. 알탕, 알밥. 열빙어는 생선 전체가 알이니. 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너무 맛나요. 아, 레몬을 열빙어 위에 살짝 뿌려주는 센스. 25마리 엄청 많더라구요. 여럿이서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면서 술잔을 짠하고 비워가며 마시기 딱인 안주예요. 배도 부르지 않구요.


        예전에 고등학교 때 사전이나 책 귀퉁이에 항상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 류의 문구를 매번 적어놓곤 했어요. 새 책에 그 문구를 적어넣을 때 꾹꾹 눌러썼던 글자들만큼 비장했던 제 마음이 아련해요. 사토시가 <슬로우 댄스> 내내 망설였던 영화에 대한 꿈, 그걸 일깨워주고 부추겨주고 응원해줬던 이 사람, 정말 맛있게 맥주 마시지 않습니까? 제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그리고 그 친구에게도 제가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이 아련해지는 날, 친구와 함께 땡겨주세요. 맥주랑 열빙어. 예전의 풋풋하고 몽글몽글했던 꿈들이 모락모락 되살아날 거예요. 그러면 우리 그 꿈을 쫓아가는 거예요. 사토시랑 에리상이 그랬던 것 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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