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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맙습니다, 남난희씨.
    티비를보다 2008. 1. 13. 19:20
       연초가 되니 괜히 조그만 일에도 심각하게 되어버립니다. 올 한 해를 잘 꾸려나가야 되겠다는 결심과 좋은 일들로만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뒤섞여서 그런가봐요. 사실 연초도 작년과 마찬가지인 하루하루인데 말이예요. 그래서 그런지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꾸 둘러보게 됩니다. 나만큼 조그만 마음에 끙끙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해법을 얻을 수 있나 하구요. 요 며칠동안 다큐멘터리들을 많이 찾아서 봤습니다. 시대를 앞서 이 땅을 살아갔던 여인 강빈에 관한 것, 어머니의 나라를 알기 위해 미국에서 와서 생활하고 있는 앤드류와 샌더, 지금의 바다에서 사라지고 있는 희귀 어종들을 다룬 방송 등등이요. 그리고 이 다큐 하나, 이번주 인간극장 '남난희의 낮은 山'을 챙겨봤습니다.


    등산을 할 때 산을 볼 줄 몰랐어요. 내가 목표로 하는 대상만 보였지 산을 볼 줄 몰랐던 거에요.
    입산해보니까 그건 산이 아니라 산의 일부일 뿐이었어요

       남난희씨는 백두대간을 여자의 몸으로 두 달여동안 혼자 종주를 하고, 히말리야 강가푸르나 산도 여성 최초로 오른 전설적인 산악인이였다고 합니다. 언제나 높은 산을 생각하고, 그 산을 오르는 열정을 불태웠던 그녀가 어느 날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 아래에 터전을 마련하고 소박하고 자연에 감사하는 조용한 삶을 살아가게 된 거예요. 높은 산들을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낮은 산 아래 들어가 살아가다보니 진정한 산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산이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지 알았다고 말하는 그녀. 적은 양의 된장을 정성스럽게 빚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오히려 남는다고 말하는 그녀. 씨앗을 뿌려주고 풀 몇 번 뽑아주었을 뿐인데, 땅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돌려준다며 감사해하는 그녀. 일주일 내내 하루에 삼십 분씩 그녀를 만나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것, 공기에 감사하고, 산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하고, 볕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녀를 대하고 있으면 제 마음이 평온해졌거든요.

       저는 욕심이 많은 인간인지라 그녀가 가진 것 하나하나가 부러웠습니다. 그녀의 집은 낮은 산을 뒤로 끼고 있어요. 그래서 카메라가 그녀의 흙으로 된 단단한 집을 멀리서 잡을 때면 낮은 산에 파아란 하늘까지 마치 한 편의 그림같은 장면이 연출되더라구요. 저는 그런 그녀의 집이 부러웠습니다. 집 앞에 마을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꽤 많은 양의 장독대가 볕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데, 저는 그런 그녀의 장독대가 부러웠습니다. 여름에는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흐르는 조그만 우물이 있고, 그 옆으로 박쥐들이 사는 온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 최적의 저장고인 작은 동굴이 있는 그녀의 자랑스러운 그 공간도 부러웠어요. 메주를 뜨는 찜질방 같이 아늑한 메주방도 부러웠구요. 흙으로 빚은 것만 쓴다는 그녀의 그릇들도 왜 그렇게 탐나보이던지요. 항상 나무로 된 것, 자연스러운 것만 사용한다는 주방의 주걱들, 국자들도 부럽고, 그녀가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우려먹는 나무 마루와 나무 탁자도 부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지금 도시에서 떠날 위인도 되지 못하면서 말이죠.


    어떤 대상보다 산과의 소통이 잘된다

       아침 시간에 산으로 산책을 하는 그녀가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흙 위를 사뿐사뿐 걷더니 큰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그 나무를 와락 안습니다. 손을 쫙 뻗어 안으니 동그란 나무가 꽉 안겨집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높이 올려다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나무 기둥에 귀를 대기도 합니다. '봄에는 나무에 물 올라가는 소리도 들려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가득합니다. 아, 나무에 물 올라가는 소리라니요. 저는 꼭 봄이 되면 산에 가서 큰 나무를 안고서 그 물 올라가는 소리를 듣고야 말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욕심만 많은 저는 인간극장을 보고 난 다음에 그녀가 먹었던 것을 따라서 된장찌개와 나물들, 그녀의 아들 기범이가 정성스럽게 만들었던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도 해 먹어봅니다. 그녀와 기범이가 그랬던 것처럼 소리내어서 아, 맛있다, 정말 맛있다, 라고 탄식해 봅니다. 그러자 정말 늦은 저녁은 낮은 산 밑의 밥상처럼 맛있었지고,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식탁이 그녀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저녁을 먹고는 단단하게 무장을 하고 중랑천 가를 걷습니다. 비록 그녀가 걸었던 산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요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지만 그녀가 보는 풍경들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사뿐사뿐 걸어봅니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왠지 작은 것에 끙끙대지 않는 방법을, 많은 것에 평온해지는 방법을 찾은 것만 같은 따스한 볕같은 마음이 찾아옵니다.

       찾아보니 그녀가 썼던 책도 있더라구요. 역시 낮은 산에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진 제목이였어요. 다음 주는 그 책을 찾아서 읽으려구요. 그리고 청국장으로 찌개를 만들어 먹고, 나물도 다른 양념없이 간장 한 숟갈과 깨만 갈아 넣어서 먹어볼 거예요. 아, 고추 장아찌두요. 너무 맛있어 보였거든요. 그리고는 긴 시간 공을 들여서 걸을 생각이예요. 오늘은 어떤 것에 감사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보면서요.
     
       궁금해서 찾아본 인터넷 서점 안 그녀의 책 서문에 이런 고마운 글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일주일동안 고마웠습니다. 남난희씨. 덕분에 제 마음이 따사로와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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