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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즐링 주식회사 - 기차가 길을 잃어버릴 때
    극장에가다 2007. 12. 28. 16:26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자주 가는 say"bonvoyage".com의 이우일 님의 짧은 글 때문이였어요. 아마존을 통해서 구입하신 듯한 <다즐링 주식회사>의 OST 사진 밑에 이런 멘트가 있었죠. "영화를 안 보고 ost만 사서 들어도 실패할 리가 없다. wes anderson의 영화 음악은. 별 다섯."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자주 가는 신어지님의 블로그 메인 사진이 <다즐링 주식회사>의 포스터라는 걸 알아차린 후였어요. 아는만큼 보인다고 바뀐 메인 사진이 이 영화 포스터인 줄 모르고 있었거든요. 기대되는 개봉예정영화 포스터를 걸어놓으시는 것 같아서 분명 괜찮은 영화겠구나 생각을 한거죠.
     
       그러고도 냉큼 개봉하자마자 보러 가지도 않았어요. 이제 곧 끝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던 저번주 토요일 날 혼자 어슬렁 어슬렁 강변까지 보러 갔습니다. 시간도 빠듯하게 도착했어요. 토요일이라 사람도 많고, 무인발권기도 모조리 꽉 차 있는 거예요. 제일 빨리 처리하고 나올 듯한 뒷모습을 찍어서 그 뒤에 섰는데, 이 아주머니께서 거기서 좌석 선택을 느긋하게 하시면서 취소하고 또 취소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참고 또 참다가 옆 무인발권기에 자리가 나서 냉큼 뛰어가서 표를 뽑아들고 들어갔습니다. 사실 조금 느긋하게 집에서 나와서 십 분 정도의 여유를 주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서 영화를 즐길 마음이였는데 말입니다. 목은 마른데 커피도 물도 없이 들어갔어요. 좌석도 거의 매진인 거예요. 극장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데나 앉으면 되겠구나 생각했거든요. 인터넷 예매라 좋은 중간 자리였어요. 꼭 붙어 있는 커플들 사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겨우 앉아습니다. 다행히 영화는 시작 전이였어요. 목 마른 것도 참고, 커피 마시고 싶은 것도 참고 영화에 집중했습니다. 마침 영화의 첫부분에 애드리언 브로디가 출발한 기차를 죽도록 뛰어서 올라타는 장면이 나왔어요. 남의 일같지 않았죠. 함께 뛰었던 빌 머레이는 결국 그 기차를 놓쳤어요.


       저는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를 한 편도 못 봤어요. 거의 제목만 들어봤구요. <다즐링 주식회사>를 보고는 구할 수 있는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모두 구해서 보리라. (구해 볼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은 것 같긴 하지만요) 후에 개봉될 그의 영화들은 모조리 다 챙겨 보리라고 결심했어요. 독특하고도 평범한 진실이 <다즐링 주식회사>에 기분 좋게 들어가 있었어요. 저는 이런 로드무비가 좋아요. 유쾌하고 독특하고 평범한. 예전에 제가 보고 생각했던 로드무비는 심각하고 어둡고 우울한 것들이였는데요. 꼭 그런 사람들만 길을 떠나는 건 아니잖아요. <미스 리틀 선샤인>처럼 따뜻하고 유쾌한 로드 무비가 좋더라구요.

       영화는 가족이라는 변하지 않는 그것을 이야기해요. 진부하죠. 식상하기도 하고. 가족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거죠. 그러기에 반복되는 것이구요. 영화의 배경은 인도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동안 만나지 못한 개성 강한 세 형제가 인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차에서 만납니다. 사고로 얼굴과 온 몸이 망가진 맏형 프랜시스. (잡지에서 오웬 월슨이 이 영화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역할을 맡아서 후에 실제 그의 자살 소동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은 감독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오웬 월슨이 맡은 역할에 그런 언급이 없더라구요. 제가 기사를 잘못 읽은 건가 싶었어요. 아무튼 자살 시도를 한 이 영화 후의 오웬 월슨을 생각하니 그의 망가진 얼굴이 너무 슬퍼보였어요. 빨리 몸도 마음도 쾌유하시길.)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이혼할 생각을 하는 둘째 동생 피터. (애드리언 브로디 삐쩍 마른 줄만 알았는데 몸이 좋더라구요. 이런 거만 보고 >.<) 헤어진 여자친구 전화 사서함을 매일 체크하는 스위트 라임 킬러 막내 잭까지. <다즐링 주식회사>는 예사롭지 않은 이 삼형제가 인도여행을 통해 마음 속 깊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일단 캐릭터들이 재밌어요. 현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이 무모하고도 순진한 삼형제. 첫째형이 뭔가를 명령하면 모조리 군말않고 따라서 하지만, 한 명만 빠지면 나머지 두 명이 뒷담화를 까는 이 엉뚱한 삼형제의 기차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해요. 결국 삼형제 기차가 종착하려고 했던 곳은 어머니였는데요. 삼형제의 엉뚱한 행동 속에 뭔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이 영화 보는 내내 들었는데 그게 바로 어머니였던 거예요.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늘 어린시절의 어떤 결핍이 성인에까지 꽤 커다란 영향을 준다고 하잖아요. 특히 어머니의 경우예요.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가 훌륭하게 성장한다고요. 삼형제의 행동들이 기가 막히게 웃게 만드는데 뭔가 시큰했던 게 이 어머니의 결핍 때문이였어요. 사실 첫째 형은 어머니의 습관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거든요. 명령을 하는 습관, 말투까지요. 또 두 형제는 그걸 고스란히 따르구요. 그들은 어머니가 그리웠던 거예요. 그리고 그 기차의 종착역에서 삼형제는 어머니를 담아오는 거예요. 마음 속에, 머릿 속에. 말보다 더 깊은 그녀의 진심을요. 삼형제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살아나가면서 마음 속 한 구석에 그로 인한 결핍이 완전히 메워지진 않겠지만 그 정도면 어머니를,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걸 거예요. 다시 길을 떠나면서요.

       이제 진정한 길을 떠나는 거예요. 이제는 철로 위의 기차가 길을 잃는 어이없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거죠. 어쩌면 지금처럼 열차시간을 지키지 못해 먼저 출발해버린 열차를 죽도록 달려가 올라타야 하는 일이 더 비일비재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제는 알아요. 그럴 때는 가지고 있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짐을 버리면 된다는 걸. 어차피 살아가면서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너와 나, 우리, 그리고 진심이 있으면 되니까. 구해내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살릴려고 노력했던 강을 건너던 소년처럼요.


       영화를 보고 찬바람을 쐬고 싶어서 일부러 전철을 타지 않고 걸었어요. 몇 정거장은 걷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한번 걸었는데 그때는 길을 잘못 들어서 한 정거장을 1시간만에 걸어서 도착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제대로 된 방향이라 생각해 뒀던 길로 걸었어요. 다리가 나왔어요. 길고 높은. 음악을 들으면서 걷고 있는데, 다리의 중간에서 플레이어 밧데리가 나간거예요. 음악 없이 다리 위를 걸었어요. 더 좋더라구요. 그리고 다리 끝에 도착해서야 이 길이 내가 가려던 길의 반대라는 걸 알았어요. 다시 방향을 돌려서 왔던 길을 걸어왔어요. 당황스럽거나 짜증나지 않았어요. 다리 위의 바람은 시원했고 저는 그냥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바른 방향으로 가면 되는 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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